오피니언 사설

실직자·은퇴자 건보료 부담 낮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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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건강보험 부담 불평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직장인과 자영업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직장가입자끼리, 지역가입자끼리도 같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급속한 고령화, 비효율적인 의료 체계 등으로 건보 재정적자가 커지는 마당에 이런 문제까지 불거져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불신 때문에 제도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제기된다.

 형평성 시비가 이는 이유는 직장과 지역 건보의 부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근로소득에만 5.64%(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를 내지만 지역 가입자는 종합소득·재산·자동차에 각각 문다. 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재취업할 때마다 건보료가 달라진다. 절반은 오르고 절반은 내린다. 이 중 실직·퇴직 후 건보료가 올라가는 것은 문제다. 2009년 직장을 떠난 64만3000여 명의 월평균 건보료가 3만6715원(근로자 부담)에서 8만1519원이 됐다. 직장에서는 기업과 근로자가 절반씩 낸다. 회사의 보호를 받다가 퇴직 후 건보료를 전부 내니까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실직하거나 퇴직하면 소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대도시에 아파트와 승용차가 있으면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 정도면 월 360만원 버는 직장인과 맞먹는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나 차를 파는 사람도 있다. 또 하위 소득 80%의 지역 가입자는 재산과 자동차 건보료를 두 번 물고 식구가 많을수록 더 낸다. 퇴직자에게 직장인 자식이 있으면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물지 않지만 자식이 없거나 직장이 없으면 물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너무 가혹하다.

 직장인 간에도 문제가 있다. 월급 외 사업·임대·배당·이자 등의 종합소득을 신고한 ‘부자 직장인’이 147만 명(소득은 21조원)이다. 의사나 변호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에서 일반 회사원까지 다양하다. 이 소득에는 건보료가 없다. 또 직장 건보 피부양자 중에는 연금소득자나 고액 재산가들이 있다. 제도를 악용해 고액의 종합소득이 있는 사람이 지인 회사에 이름을 올려 건보료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 2007~2010년 1632명이 적발됐다.

 형평성 문제는 2000년 직장·지역 건보를 통합할 때 잉태됐다. 다른 부과방식 때문에 직장인들이 통합을 반대했지만 국민의 정부는 밀어붙였다. 그 이후 10년간 문제점을 알고도 눈을 감는 사이에 형평성은 더 악화됐다.

 그렇다고 다시 갈라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선 지역 가입자 중 실직자·퇴직자·서민들의 주택(아파트) 한 채에 한해 건보료를 낮춰야 한다. 고급차가 아니라면 차 건보료는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면 연 소득 500만원 이하의 지역 건보 가입자의 재산·차 건보료 이중 부과를 없애야 한다. 대신 ‘부자 직장인’의 종합소득과 피부양자의 고액의 연금소득에 건보료를 물리되 순차적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자. 중장기적으로 직장과 지역의 건보료 부과 기준을 소득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