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생치안 위해 파출소 난동 근절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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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취객에게 멱살 잡히고, 욕설을 듣고, 흉기에 찔리고, 행패를 피해 달아난다. 여느 술집의 밤 풍경이 아니다. 전국의 파출소와 지구대에서 밤낮 없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공권력 최전방에서 이런 일이 방치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경찰의 대응만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정작 필요한 민생치안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 이런 지경이 된 데는 지나치게 엄격한 복무지침, 경찰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폐쇄회로TV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시민의 인권보호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공권력이 지나치게 위축돼 속수무책으로 무너져서는 곤란하다.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이달 초 벌어진 취객 난동은 경찰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줬다. 폐쇄회로TV에는 취객이 흉기를 휘두르고, 의자로 맞서던 경찰의 팔이 찔리는 모습이 생생했다. 경찰은 허리띠에 채워진 가스총을 뽑지도 못했다. 결국 지나가던 시민들과 합세해 흉기를 빼앗고, 동료 경찰관들이 도착해서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관들은 가스총을 썼다가 사고가 나거나 곤봉으로 제압하다 불상사라도 나면 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자탄(自嘆)한다. 복무지침에는 권총이나 곤봉, 수갑은 ‘최악의 경우’에만 쓰도록 규정돼 있다. 자칫 과잉제압으로 비난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선 경찰은 피하거나 얻어맞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여긴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문제다. 매뉴얼을 고쳐서라도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얻어터지고 피하기에 급급한 공권력을 어디에 쓰겠는가.

 올 들어 3월까지 전국 지구대에서 난동을 부리다 체포된 취객이 1689명이나 된다고 한다. 하루 21명꼴이다. 기물 파손과 욕설·행패는 보통이고 물어뜯거나 심지어 공공연히 용변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을 뒤치다꺼리하느라 순찰을 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공권력 실추는 경찰 자신의 책임이 크다. 비리와 불법으로 신뢰를 잃은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생치안의 보루가 무너지면 누구보다 시민이 불행해진다. 충북경찰처럼 ‘주폭(酒暴)과 전쟁’이라도 벌여 파출소 난동을 근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