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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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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大藏省)은 ‘오쿠라 호텔’로도 불렸다. 워낙 철야근무가 잦은 데다 일본식 발음 ‘오쿠라쇼’가 도쿄의 최고급 오쿠라(大倉)호텔과 비슷한 탓이었다. 이렇듯 불철주야 일한 관료들의 헌신 덕에 대장성은 일본의 경제적 기적을 일궈낸 ‘성(省) 중의 성’이란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 대장성 관료들은 일본 공직사회의 고질병인 낙하산 인사의 주범으로 인식돼 왔다.

 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낙하산 인사가 심각하다. 이를 통칭하는 ‘아마쿠다리(天下り)’가 노상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토속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유래한 이 말은 신이 천계(天界)에서 땅으로 하강한단 뜻이다. 낙하산 인사와 어쩜 그리 표현 방식과 뜻이 똑같은지 감탄할 지경이다.

 물론 낙하산 인사가 양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양에선 프랑스가 특히 심해 낙하산 인사를 뜻하는 ‘팡투플라주(pantouflage)’가 일상용어가 됐을 정도다. 슬리퍼란 뜻의 ‘팡투플(pantoufle)’에서 나온 것으로 슬리퍼를 끌며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듯 퇴임 공직자들이 뭇 회사들을 전전하는 걸 풍자한 거다.

 낙하산 인사가 심한 나라엔 몇몇 공통점이 있다. 고급 관료 대부분이 까다로운 국가고시를 패스한 일류 엘리트들이며 이들이 국가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행정 장악력도 강력해 물러난 선배들을 산하기관에 넣어주는 건 일도 아니다. 자연 막강한 칼을 쥔 관료들을 대해야 하는 기업들로선 이들과 끈이 닿는 퇴임 공직자 고용이 매력적인 카드일 수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가 비판받는 건 빈둥거리면서 두툼한 월급을 챙기는 퇴임 공직자들의 행태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이들이 자주 바람직한 규제를 가로막는 탓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설득력 있게 분석한 틀이 노벨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러의 ‘포획이론’이다. 국민 편에 서서 기업을 통제해야 할 국가의 규제장치가 기업 이익 보호에 악용돼 왔으며 이는 관료들이 막강한 기업에 의해 포획됐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 과정에서 회사에 스카우트된 퇴임 공직자들이 활용됐음은 불문가지다.

 요즘 금피아라는 악명을 얻게 된 금감원에 매서운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낙하산 관행을 뿌리뽑지 않는 한 무사하지 못할 듯하다. 관료천국 일본에서도 아마쿠다리 방지를 위한 ‘인사공정위원회’ 설치안이 올 초 발표되는 등 낙하산 철폐가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는 형국인 까닭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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