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초콜릿처럼 단것 좋아하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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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

“일주일 내내 거의 잠을 못 잤어요.” 몇 년 전 인기 여성 연예인이 클리닉을 찾아왔다. 그녀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수 없다며 고통스러워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뭇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다가, 인기가 썰물처럼 빠지면서 그 자리를 악플이 대신하는 경험은 견디기 쉬운 스트레스는 아닐 터다.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방송에서의 사교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존재의 고독이 느껴졌다.

 “담배는 태우세요? 초콜릿 같은 달콤한 것 좋아하세요?” “제가 단것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집이랑 차에 초콜릿이랑 사탕을 쌓아 놓고 그것만 먹어요. 담배는 하루 세 갑 피우고요.”

 그녀는 니코틴과 당분이라는 합법적 마약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정서적 공허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약들은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 중독환자의 금단증상처럼 그녀의 불면은 깊어만 갔던 것이다. 그녀가 외로움이라는 중독에서 벗어나고 수면제 없이 잠이 드는 데 이후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최근 점점 짧아지고 있는 평균 수면시간이 비만 등 다양한 생활습관 질환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1960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사람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8~8.9시간이었다. 요즘 9시간 잔다고 하면 거의 인생 포기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2008년에 다시 조사를 하니 6시간40분이었다. 2시간 정도 수면이 줄어든 것이다. 정도의 문제지 수면 감소는 전 인류적 현상으로 보인다.

 문제는 독한 의지로도 안 되는 것이 수면이라는 것이다. 조물주는 잠자는 것을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 ‘자자’고 이성이 명령만 내리면 수면 중추가 작동하여 잠이 오면 좋으련만, 오히려 자려고 노력하면 잠이 더 오지 않는 것이 수면의 모순적 생리다. 오죽하면 ‘오늘 12시까지 잠을 자지 않겠다’고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불면 치료법 중의 하나이겠는가. 잠은 이성적 노력으로 오지 않는다. 뇌가 주변 상황을 평화적으로 인식하고 우리 뇌의 감성 톤이 떨어져야 잠이 오도록 설정되어 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평균 수면시간이 줄고 있다는 것은 조물주가 만든 목적 이상으로 우리가 성취에 욕심을 내고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가 항상 전시 상태로 자지 못해 피로한 상황이고, 이 피로감은 감성의 뇌에 위험 신호를 보내 더 각성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선지 요즘 정부나 기업체로부터 ‘스트레스 관리’ 강의 요청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세이브를 챙기러 들어가는 구원투수 같은 마음으로 갔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이 되는 듯해 마음이 불편하다. 더욱이 ‘스트레스 관리’란 말만 쉽지,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가 만만치 않다. “정신과 의사는 스트레스 분야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인 것 같은데, 실제 보면 관심도 없고 지식도 매우 한정적인 것이 사실이다”라는 신경정신의학회지 글귀가 떠오른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것은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으나 막상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마음 편히 먹어’라는 식의 피상적인 조언만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금언처럼 적극적인 스트레스 관리는 우리 뇌에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 뇌에 쾌감을 주는가. 앞의 여배우처럼 술, 담배, 초콜릿 같은 자극적이고 달콤한 것들이 쾌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일 뿐, 결국 내성을 만들어 불면과 같은 스트레스 관련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쾌락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리스의 에피쿠로스는 학교를 세우고 남녀 학생들을 모아 쾌락의 극한을 연구하였다.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쾌락의 대가가 제시한 인간 쾌락의 키워드는 성적인 것도, 자극적인 것도 아닌 우정, 자유, 사색이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건대 비즈니스 만남이 아닌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우정의 시간을 얼마나 보내고 있는가. 혼자만의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인간 본연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더 성공하고 더 벌기 위해 이 키워드들을 뒤로한 채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땅의 것만 주워먹다가 나는 기능을 잃어 멸종한 도도새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조물주가 이미 심어 놓은 행복 소프트웨어가 성취 이데올로기에 눌려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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