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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과 박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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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선 굵고 털털한 정치를 한다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치밀하고 꼼꼼한 정치를 한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두 사람을 ‘곰과 여우’에 비유한다. 곰과 여우가 이제 원내사령탑에서 물러난다.

 참 다른 스타일이지만 타협을 중요시하는 건 닮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예산안 정국에서 핏대를 올리며 싸웠다. 지난달 29일엔 북한인권법 처리를 놓고 ‘빨갱이’ 소리까지 해가며 낯을 붉혔다. 이런 충돌 외엔 타협을 기치로 어느 선까진 협상 정치를 복원시켰다.

 북한인권법 문제로 다툰 후 김 대표는 “박 대표와 더 대화를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할 만큼 화를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 대표는 기자와 만나 “그땐 화가 많이 났지만 얼마 전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를 만나는 자리에서 한잔하며 다 풀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협상 파트너로 존중할 만한 상대”라고 했다. 박 대표도 “김 대표는 경륜을 갖췄고 야당의 입장을 많이 이해했다”고 호응했다.

 4일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소신은 인상적이었다. 여야는 지난 2일 비준안 처리에 합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학규 대표가 합의를 뒤집으며 난관에 봉착했다. 김 대표는 ‘민심 악화’란 재·보선 패배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불참 속 처리’를 강행했다. “처리가 안 되면 새 지도부가 협상을 다시 해야 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며 ‘단독 처리’란 짐을 졌다. 박 대표는 당내 반발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그가 비준안 처리 후 “열린우리당 시절에 국가보안법 폐지만 고집하지 말고 찬양고무죄를 없애는 대체입법만 추진했어도 국가보안사건은 없앨 수 있었다”고 한 것은 민주당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여야가 비준안 처리에 합의할 때 민주당이 서민을 위해 요구한 ‘SSM 규제법’ 개정안과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이 오히려 민주당의 불참으로 처리되지 못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원내대표를 지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경우다. 김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정치를 배워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다. 이후엔 친박근혜계 좌장을 지냈다. 항상 누군가의 그늘에 있었다. 그런 그가 친박 울타리를 벗어난 후 원내대표가 되면서 정권의 신(新)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내가 무슨 실세고, 측근이냐.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지켰을 뿐”이라고 항변할 정도다. 박 대표에게도 진한 ‘참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정치 일생의 상당 부분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로 보냈다.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정치력은 ‘DJ 비서’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이다. 당장 두 사람이 물러난다고 하니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나설 거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1년 전엔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광경이다.

 둘의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1년 동안 ‘김무성 정치’와 ‘박지원 정치’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을 뿐이다. 그들의 선택은 틀림없이 내년 정권의 향배에 영향을 줄 거다. 그게 정권 창출에 덧셈이 될지 뺄셈이 될지를 지켜볼 차례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