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의 아쉬운 원론적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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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4일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특사로 방문한 나라들에 대한 얘기를 길게 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 할 만한 얘기는 드물었다. ‘신뢰와 원칙’이라는, 그야말로 원칙적인 얘기에 그쳤다. 특사로서 성과를 말하는 것도 좋지만, 현 시점에서 박근혜는 단순한 특사가 아니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우왕좌왕하고 있는 여당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다. 지금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박 전 대표가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신중론이 여러 면에서 차기 대권 장악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서둘러 나설 경우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親李)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게 될 경우 길고 험한 대권가도를 완주하기 힘들 수 있다. 다른 한편,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친박(親朴) 세력들이 지금까지 주장해왔듯 “조용히 있는 것이 현 정부를 돕는 것”이란 말도 일리는 있다. 자칫 대통령과 갈등을 빚게 되면 국정의 혼선과 비효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27 재·보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한나라당 내부, 특히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박근혜 역할론’이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장대 꼭대기에 올려놓고 흔들기’로 의심하는 것은 지나치다. 재·보선의 충격적 패배에 따른 위기감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 박 전 대표 스스로도 특사로 나가기에 앞서 “(재·보선 결과에 대해) 저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는 대의(代議) 정치며, 국민의 뜻을 대신하는 역할은 정당의 몫이다. 특히 국정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은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수용해 국정에 반영하는 데 1차적 책무를 지고 있다.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받드는 출발점은 정치권의 혁신이다. 박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서 그 책무를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떠안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