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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부동산 활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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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

‘58년 개띠’로 대변되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지난해부터 직장 정년인 만 55세를 넘기 시작했다. 55세에 진입하는 인구는 근래 5년간 연평균 44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앞으로 9년 동안은 매년 약 8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로 급증한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에 달한다. 가구 기준으로는 23%를 넘는다.

 우리나라는 같은 고민을 겪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상황이 더 암담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일시에 대거 정년을 맞으면서 쓰나미 같은 양상이 우려된다. 이는 이미 대다수 ‘58년 개띠’의 인생역정에서 목격됐다. 초등학교 2부제 수업, 고교 평준화, 대학 졸업정원제, 부동산 투기 붐, 조기 퇴직 등 베이비붐 세대는 기존 사회 틀과 관행을 통째로 바꾸면서 살아야 했던 세대다.

 이제 그들이 본격적으로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하지만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많은 대책과 준비가 필요하지만 요는 노후생활비, 즉 돈 문제다. 근래 조사를 보면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후 실수령 연금 등 소득이 은퇴 후 필요한 소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더욱이 본격 소비시대를 연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 성향과 향후 물가 불안까지 감안하면 이 정도는 거의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구조에도 문제가 많다.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이고 나머지 금융자산도 80% 이상이 예·적금이나 보험 등 안전자산이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서는 수익률이 너무 낮고 돈도 묶이게 돼 재산은 좀 있으나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자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은퇴 이후의 소득이 지출계획에 맞도록 보유자산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가령 역모기지 등 부동산 유동화나 금융자산의 리밸런싱(Re-balancing)을 꼽을 수 있다. 호주나 영국의 경우도 우리처럼 은퇴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이들 국가에는 은퇴자의 보유주택을 유동화해 소득 흐름을 만들어 내는 다양한 제도와 회사가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은퇴자산이 부동산보다는 금융자산으로 이뤄져 있고 주식 등 투자상품 비중이 크게 운용된다. 투자수익으로 소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신체 종합진단이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현재의 재산 상태가 은퇴 후 생활을 가능케 할지 객관적인 종합진단이 시급하다. 금융자산의 경우 보험의 중복 보장, 가입 때보다 낮아진 수익률, 투자 실패로 방치된 투자상품, 가입한 지 너무 오래돼 어떤 상태인지 알기 힘든 금융상품들이 의외로 많다. 가령 2000년대 전반 종신보험에 뒤늦게 가입한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보험금은 죽어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금융자산 구성을 시장 상황에 맞게 조금만 변화시켜도 은퇴생활의 질을 확 바꿀 수 있다. 또 금융자산과 소득이 별로 없는 경우 은행의 역모기지 등으로 부동산을 유동화해 소득 흐름을 만들어 내는 방안도 있다. 다만 부동산 유동화 방법이 제한적이고 조건도 까다롭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은퇴자의 부동산 유동화는 사실 부동산 투기와 관계가 거의 없고, 고령화 시대의 사회안전망을 위해 활성화해야 한다. 영국·호주처럼 은퇴자의 주택담보대출 등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제한적으로 해 주는 정책 배려도 시급하다.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