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공장·신발공장 다니며 40년 쪽잠으로 번 돈인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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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비상대책위 비상총회가 1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지하주차장에서 열렸다. 총회에 참가한 피해자들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모(61)씨는 스무 살에 시집온 뒤 가방공장·매니큐어공장·박스공장·신발공장 등 안 다녀본 공장이 없다. 10년 전부터는 몇 푼 더 모아 보겠다고 공장 일을 야간으로 돌리고 아침마다 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40년간 쪽잠으로 버텨 가며 번 돈으로 아이들을 공부시켰다. 박씨는 “이제는 사고로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남편(74)만 돌보며 노후자금으로 조금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 2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박씨의 꿈도 함께 묶였다.

 38세의 노총각 아들을 장가보낼 생각에 들떠 있던 남모(68)씨도 5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8000만원을 당분간 찾을 수 없게 됐다. 아들 결혼비용에 쓰고 나머지는 본인 노후자금으로 삼으려던 거였다. 남씨는 정신적 충격에 약까지 먹고 있다. 남씨는 “월남전에 참전도 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아들 결혼자금만이라도 빨리 찾게 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배모(61)씨도 마찬가지다. 배씨는 평생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푼 두푼 모은 1억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사업장에서 일하다 쓰러져 ‘악성빈혈’ 진단을 받았고 회사에서 퇴직해야 했다. 그는 “퇴직금과 평생 모은 돈이 부산저축은행에 있다”며 “업계 1위였던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가 됐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생활비 20만~30만원이 없어 거리로 나앉아야 할 처지도 많다고 한다. 단순한 재산상의 피해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 사람을 포함해 부산저축은행 예금자 비상대책위원회에 가입한 회원은 2200여 명이다. 비대위 회원들의 피해액은 2500억원에 달한다. 자녀 결혼자금이나 노후자금을 예치한 60~70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가슴 아픈 사연은 더 있다. 일가족이 부산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물린 경우도 있고 출산을 앞둔 한 30대 주부는 남편과 8년 가까이 모은 돈 8000만원이 묶이는 바람에 아파트 잔금을 치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영업정지 전날 3900여 명이 부산저축은행 등 7개 은행에서 예금을 찾아갔다는 사실에 피해자들의 분노는 더 컸다. 전체 예금주인 39만여 명의 1%만이 영업정지 전날 1077억원을 인출한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대부분 VIP 고객들과 은행 임직원 및 친·인척 등이라고 한다.

 대검 중수부가 배수진을 치고 수사에 임하는 이유다. 대검 우병우 수사기획관은 “특혜 인출자들을 모두 조사하기 위해 검사나 수사관을 부산 현장에 보내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임현주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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