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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시~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6호 10면

떨어진 꽃잎도 바람에 쓸려 다들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랩니다. 들판의 보리이삭이 어느덧 패어 바람결에 슬렁슬렁 흔들립니다. 꽃놀이패의 아우성은 멀어지고 들판의 아우성이 농부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요사이 경운기에 실린 짐은 주로 못자리용 ‘상토’이고, 지게 짐은 못자리용 댓가지입니다. 상토는 모판 바닥에 까는 흙이고, 댓가지는 모판을 덮는 그늘막 지지대로 쓰입니다. 일 년 농사가 출발했습니다. 보리밭 어느 한 편에 마련한 못자리에 물을 대어 물구덩이를 만들고 모판 깔 준비를 합니다. 들판 구석에서 한 할아버지가 듬성듬성 고인 물을 빼내려 삽질을 열심히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치우치지도 아니한 평평함으로 중용을 찾는 삽질입니다. 그래야 땅이 너무 질척이지도, 고슬고슬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야 모판의 모가 탈 없이 자랍니다. 등줄기 허리춤에 잔뜩 힘이 들어간 할아버지의 두 발이 논바닥을 확고히 디디고 있습니다. 지구 중심이 끌어당기는 중력을 거뜬히 이겨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무한한 힘을 보았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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