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 아래 분당서 … 믿기지 않는다” 청와대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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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4·27 재·보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다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밤 11시 한나라당의 패배가 확인되자 보인 반응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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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는 이날 하루 종일 재·보선과 관련해 공개 발언을 삼갔다. “선거는 당에서 치르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내심 기대는 했다. 정무 라인을 중심으로 전날 “강원을 포함해 한두 곳은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선거 결과에 더 충격이 큰 듯했다.

 일부 인사만 사석에서 “천당 아래인 분당에서 지면 앞으로 선거를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선거 결과가 지금처럼 나오면 앞으로 어떤 정국이 펼쳐질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청와대가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 건 이번 선거가 2012년 총선·대선 레이스에 들어가기 전에 실시되는 마지막 선거라는 점에 있다. 그런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지면 당장 여권 내부에서 청와대를 겨냥한 성토가 나올 게 분명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책임론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선거에서 패하자 앞으로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그로 인해 이 대통령의 국정 주도력은 급속도로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청와대는 당초 한나라당이 이길 경우 내각 개편을 위주로 하고, 청와대 참모진은 개편을 하더라도 소폭으로 마무리하는 걸 검토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패하자 청와대에선 “행정부뿐 아니라 청와대도 대폭 물갈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거취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는 이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다. 임 실장은 성남 분당을 공천 과정에서 강재섭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개표 막판 강 후보가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 패하자 여권에선 임 실장 경질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고위 관계자는 “임 실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이 강한 만큼 그가 이동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걸로 봤으나 선거결과가 좋지 않은 걸로 나온 이상 그의 유임을 자신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임 실장이 바뀔 경우 류우익 주중대사, 백용호 정책실장,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가 대통령 실장 후보로 거론된다.

 내각의 4∼5개 부처 장관은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바뀔 걸로 보인다. 특히 구제역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미 물러나겠다고 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나 이만의 환경부 장관, 또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교체될 게 틀림없다. 장수 장관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한두 명의 장관도 개각 명단에 추가될지 모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핵심 측근인 류우익 주중 대사를 귀환시키는 내용의 인사를 발표했는데 이는 재·보선 이후의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염두에 사전 포석”이라며 “이 대통령은 재·보선에서 표출된 민심을 고려한 인사 개편안을 5월 중 국민 앞에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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