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엔 백약무효 긍정적 포기로 멘털 다스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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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20면

로리 매킬로이가 마스터스 3라운드 10번 홀에서 파 퍼팅에 실패한 뒤 고개를 떨구고 있다. 매킬로이는 최종 4라운드 이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오거스타 로이터=연합뉴스]

차세대 골프 황제로 평가받는 로리 매킬로이(22·북아일랜드·사진)는 14일(한국시간) “마스터스의 충격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나는 메이저 우승 기회를 많이 잡게 될 것이다. 마스터스는 작은 과속 방지턱에 불과했다.”

한 방에 가는 잔인한 스포츠, 골프

지난 11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마스터스 마지막 날. 전 세계 골프팬들의 눈과 귀는 불볕 더위가 급습한 오거스타에 쏠렸다. 타이거 우즈에 이어 두 번째 어린 나이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눈앞에 둔 매킬로이 때문이었다.

그가 최종 4라운드 첫 홀에 들어섰을 때 12언더파로 4타 차 단독 선두였다. 그러나 그는 한 방에 무너졌다. 4라운드 스코어는 80타. 8타를 까먹은 그의 최종 성적은 4언더파로 우승자 샬 슈워첼(남아공·14언더파)과는 10타 차이가 났다.

#장면1. 10번 홀(파4·495야드).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까지도 매킬로이는 여전히 4타 차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송곳 같은 드라이브샷을 자랑하던 그의 티샷은 왼쪽으로 감겨버렸다. 볼은 숲을 지나 숙소 건물 두 채 사이 언덕으로 떨어졌다. 레이업에 이은 세 번째 샷이 숲에서 나오지 못했고 네 번째 샷마저 나무에 맞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결국 5온·2퍼트로 트리플 보기를 했다.

#장면2. ‘아멘 코너(11~13번 홀)’는 평정심을 잃은 매킬로이를 용서하지 않았다. 11번 홀(파4·505야드)에서 다시 한 타를 잃은 그는 12번 홀(파3·155야드)에서는 1.5m 거리에서 3퍼팅을 해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아멘 코너에서 가장 쉽다는 13번 홀(파5·510야드)에서도 티샷이 왼쪽으로 크게 휘면서 워터 해저드에 빠졌다. 파로 막았지만 10~12번 홀에서 6타를 까먹었다. 지옥 같은 아멘 코너를 통과하고 나니 그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골프 물리학은 불안한 멘털 용서 안해
타임은 마스터스가 끝난 다음 날 ‘치열한 심리전을 필요로 하는 모든 게임 가운데서 골프가 가장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썼다. 매킬로이가 강철 같은 정신력과 행운을 갖고 있었더라면 10번 홀을 보기로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샷의 작은 실수 하나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골프라는 스포츠다.

유소연·이보미 선수 등의 심리상담을 진행한 조수경 박사(조수경스포츠심리연구소장)는 “그렇게 멘털이 흔들리면서 혼돈에 빠지면 골프의 물리학은 용서가 없다”고 했다. 멘털이 무너지면 아무리 잘 훈련된 선수라 할지라도 물리학적인 요소가 지배하는 스윙의 매커니즘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뜻이다. 조 소장은 “어떤 압박감 속에서도 최고의 수행을 이끌어 내려면 ‘충분한 경험’과 ‘충분한 훈련’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 두 요소를 심리학에서 ‘에너지 관리’라고 하는데 매킬로이는 충분한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소장은 또 “그가 10번 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 조절 능력, 즉 대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프로골퍼 출신인 김아영 KLPGA 경기위원(한국체대 스포츠심리학 박사과정)은 “1~3라운드 선두였던 매킬로이의 기술적인 스윙 요소가 하루 사이에 급감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양용은이 2009년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PGA챔피언십에서 역전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멘털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양용은은 기자들이 최종일 우즈와 맞붙는 게 두렵지 않으냐고 묻자 “우즈가 힘으로 나를 때려서 이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두렵고 겁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은 “양용은의 이런 마음이 골프의 강한 멘털”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의식·과시욕 앞서면 무너져
김 위원은 “주말 골퍼들도 매킬로이처럼 한 방에 라운드를 망친 경우가 많다”며 “골프에서 멘털은 ‘마음의 감기’와 같다. 언제 어느 때 감기에 걸릴지 모르는 것처럼 골프의 멘털도 언제 어느 샷에서 무너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플레이 기복이 심하고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한다. 첫째는 친구 등 경쟁의식이 강한 동반자와 플레이를 할 때고, 둘째는 자신의 강력한 샷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거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지배심리가 꿈틀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체대 윤영길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심리적 변곡점에서 갑자기 주저앉게 되면 상황을 반전하기는 어렵다. 늪에 빠진 것과 같다. 이럴 때는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기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게 마무리하고 다음 홀을 준비하자’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말하자면 ‘긍정적 포기’다.

조 박사는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마음만 앞서고 상대와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을 하는 데서 멘털의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난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큐(Cue·실마리)’를 하나 붙잡는 방법을 제시했다. 망가진 다음 홀에서는 ‘잘 쳐야지, 본때를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잘 안 되는 한 가지(체중이동·손목사용·스탠스 등)에 집중해서 스윙을 하는 것이다.

김 위원은 “샷의 오차 범위를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처럼 아마추어도 심리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5일 PGA 투어 발레로 텍사스오픈 첫날 재미동포 나상욱은 매킬로이보다 더 끔찍한 대형사고를 냈다. 9번 홀(파4·474야드)에서 무려 16타를 쳤다. 이게 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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