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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4400억’ 신용카드사 기름값 인하 동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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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배
한국석유유통협회 상근부회장

SK에너지를 비롯한 국내 정유 4사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L당 100원 할인해 주기로 했다. 정유사들은 정부의 권고안인 L당 22.8원(휘발유 기준)보다 5배나 더 내리는 고육지책을 택했다. 앞으로 3개월간 진행될 한시적인 가격 인하 조치로 국내 정유사들은 7000억~8000억원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올 1월 13일 “기름 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시작된 정부의 유가인하 작업에 정유사들은 자발적으로 성의표시를 한 셈이다.

 이제 여론은 정부의 세금 인하에 쏠리고 있다. 정유사가 고통분담에 나섰으니 정부가 결단할 차례라는 것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라는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유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유가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유류세 인하는 그 시기가 문제일 뿐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유사·정부에 이어 고유가로 인한 고통 분담을 고민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 바로 신용카드사다. 현재 주유소는 신용카드로 석유제품 판매 때 판매가격의 1.5%를 카드사에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용카드 결제금액은 총 280조4324억원이다. 이 중 유류대금은 29조6524억원으로 전체 업종 중 거의 최고치인 10.57%를 차지하고 있다. 주유소 카드 수수료율이 매출액 대비 1.5%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신용카드사들은 지난해 주유소 업종에서만 4447억원의 수수료 수입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신용카드 수수료는 매출액에 1.5%의 정률로 적용돼 요즘 같은 고유가 시기에는 유가인상의 한 요인으로 작용해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2000년 L당 1248.35원이던 휘발유 가격의 경우 카드수수료는 18.73원이었으나 2011년 2월 휘발유 가격이 1850.24원으로 오름에 따라 수수료도 27.75원으로 9.02원 인상됐다. 또한 2000년 L당 612.78원이던 경유는 2011년 2월 1562.42원으로 오름에 따라 카드수수료도 9.19원에서 23.44원으로 14.25원이나 인상돼 유가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카드사들은 1.5%인 주유소 카드 수수료율을 1%대로 낮춰 기름값에 대한 국민적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

 그동안 석유업계의 끈질긴 카드수수료 인하 요구에 대해 신용카드사들의 모임인 여신금융협회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요구는 기름값 인하 목적이 아니라 정유업계의 마진증대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왔다. 하지만 신용카드사들의 이러한 주장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기름값에 1.5%로 부과되는 카드수수료는 국민경제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업종에 비해 크다. 주유소 신용카드 매출은 일반음식점 카드 매출과 더불어 전체 업종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주유소 카드수수료를 인하하면 국민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카드 수수료를 0.5% 인하한다면 연간 2000억원 규모의 소비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6일 “주유소 단계의 거래비용 축소 방안으로 1.5%로 획일화된 주유소 카드수수료의 불공정행위 여부 등 공정거래를 위한 상시감시 강화 및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신용카드사들도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카드 수수료율을 낮추어 유가인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신용카드사들의 대승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김창배 한국석유유통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