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50) ‘관씨의 저주 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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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20년, 참으로 대단한 관계였습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고 합니다. 세계 어느 시기,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와 규모로 경제 협력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제로(0)에 가깝던 양국 무역량은 연간 2000억 달러에 육박합니다.

겉만큼 속도 바뀌었습니다. 수교 초기만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선생님'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돈이 많았고, 기술이 좋았던 때문입니다. 중국에 가면 폼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술 집에 가서 '돈 자랑'을 하는 한국인들도 많았지요. 중국인들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라면 중국이 훨씬 많고, 기술도 어지간한 부분에서는 한국을 따라잡았습니다. 중국에 가서 '돈 자랑'했다가는 봉변당하기 십상입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만 흐르던 양국 투자흐름은 이제 거꾸로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 회사들이 중국 투자 자금(차이나 머니)을 잡기 위해 뛰어야 할 판입니다.

이같은 역학 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중하나가 지난 2000년 5월 터진 '마늘파동'이요, 둘 째가 최근 발생한 '상하이 스캔들'입니다. 마늘파동 얘기는 이미 전 칼럼을 통해 2회에 걸쳐 상세하게 알아봤습니다. 혹 보지 않으신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시어 일독을 권합니다.

자, 그러면 상하이스캔들 마지막 칼럼을 올립니다(경제콘서트 48,49편에 연결됩니다)

일본에 지진이 발생했고, 쓰나미가 일었습니다. 지진은 한 순간에 터졌지만, 땅 속에서는 수백 년 지각운동이 있었을 겁니다.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충돌이 발생했겠지요. 그 힘이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것이 바로 일본 동북대진입니다.

인간 세상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회를 경악하게 한 사건이 이면에는 거대한 힘의 충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힘이 쌓이고 쌓여 폭발합니다. 이번 상하이스캔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양국 사이에 쌓이고 쌓였던 모순이 터져나온 겁니다.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보는 중국'과 '실제 중국', 둘 사이에서 발생한 모순입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위 경제대국입니다. 정부 곳간에 3조 달러를 쌓아두고 있는 나라입니다. 슈퍼파워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외환보유액 중 1조 달러는 미국 국채로 갖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R&D(연구개발)분야 두 번째로 돈을 많이 쓰고 있는 나라기도 합니다. 이미 유인 우주선을 쐈고, 달나라를 가겠다고 나섭니다. 올림픽을 치렀고, 올림픽 이후 세상에 대해 '뿌(不.No)'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게 바로 실제 중국입니다.

그러나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있습니다. '중국'하면 짝퉁이 떠오르고, 시끄럽고 더러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내가 공장을 열면 일하겠다는 농민공들이 정문에 줄을 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장님들이 계십니다. 가라오케에 가서 돈 자랑 하던 그 시절의 시각으로 중국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어와 금융학으로 무장한 젊은 중국인들이 런던과 뉴욕 증시를 휘저으며 중국 회사 상장(IPO)에 성공하는, 그런 모습은 상상하지도 않습니다. 중국 주요 도시에서는 노동자를 구할 수 없어 아우성이고, 노동자 잘 못 다뤘다가는 하루 아침에 문 닫아야 한다는 점도 알지 못합니다. 옛날의 중국이 아닌 겁니다.

많은 정치인이 중국에 갑니다. 그리고는 꼭 지도자를 만나야겠다고 합니다. 중국 각 급 지도자들은 내가 콜(call)하면 달려나와야 하는 존재입니다.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 시절 상하이를 방문했던 이상득 의원도 그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뉴욕에 갔더라면, 아마 달랐을 겁니다. 뉴욕시장을 쉽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통령 형이라도 특별한 미션이 없다면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뉴욕에 가면서 '시장을 어랜지하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거기는 어차피 안될 것임을 아니까요. 그런데 중국에만 가면 꼭 고위 지도자를 마나야 합니다. 그들에게 중국은 아직도 가라오케에 가서 돈 자랑하던 시절의 중국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현지 총영사관은 죽어라고 어랜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상하이가 어떤 도시입니까. 뉴욕하고 맞짱뜨겠다고 달려드는 도시입니다. 그 곳 당서기, 시장들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서방 자금과 기술에 굽신대던 상하이는 지금 없습니다. 상하이 시정부 사람들에게 한국은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돈 좀 생기니 거만해졌다'라고 말하지요.

김 전 총영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관씨를 활용해 뚫어야지요. 그 관씨가 덩신밍이었고, 그에게 휘둘린 겁니다. 그게 상하이스캔들의 원인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제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봐야 합니다. 제2위 경제대국을 인정해야하고, 또 그들의 잠재력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중국이 보이고, 제대로 된 대 중국 정책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의 헛점이 보이고, 우리의 살 길이 보이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 지를 알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가 보이는 겁니다.

천안함이 침몰됐습니다. 연평도가 공격받았습니다. 우리는 중국에게 '어느 편인지 밝혀라'라고 요구했습니다. '내 편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옛날 시각으로 중국을 본 겁니다. 우리가 콜(call)하면 달려오고, 우리가 투자한다면 신발 벗고 뛰어오던 옛날 시각에서 나온 발상이었던 겁니다.

중국의 입장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한국 편에 서기를 거부했습니다. 속내는 뻔합니다. 그들의 첫 한반도 정책은 '안정'입니다. 그게 중국의 핵심 이익(Core interest)입니다. 한국 편에 서지 않는 것이 그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겠지요.

그러자 국내에서 중국을 성토하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때 놈들이 어찌 그럴 수 있어'라는 식이었지요. '돈 좀 벌었다고 변했네', '저 놈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도 모르나...' 당연히 우리 편에 설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났기에, 그 실망은 분노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양국 관계는 더 멀어집니다.

중국 태도에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보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중국을 보니 자꾸 어긋나는 것입니다. 지난 십 수년동안 우리가 중국에 조금 낳았다고 해서, 그 추억만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낭패를 볼 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봐야 합니다. 그들의 실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냉철한 분석이 나오고, 정확한 대책이 나옵니다. 그래야 그들의 행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가 그렇고, 또 비즈니스가 그렇습니다. 옛날 식으로 중국을 대하다 예상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때놈들이 왜 저러지...'라고 돌아서는 일, 더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

상하이스캔들은 언젠가 터질 일이었습니다. 한중 수교 20여 년 변화된 양국 힘의 역학관계가 표출된 것일 뿐입니다. 사건은 잊혀질 겁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면에 감춰진 시대적 의미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게 긴 문장으로 상하이스캔들을 다뤘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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