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할머니가 ‘귀를 잡수셨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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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연세 드신 어른 가운데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분이 꽤 있다. 어릴 적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다. 자식들이 할머니 귀에 대고 엄청 큰소리로 얘기해야 겨우 알아듣곤 하셨다.

 이처럼 어르신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 ‘귀를 잡수셨다’ 또는 ‘귀가 잡수셨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일반적으론 ‘귀를 먹었다’ 또는 ‘귀가 먹었다’고 하지만 어른에겐 ‘먹었다’는 표현이 불경스러워 ‘귀를(귀가) 잡수셨다’고 하는 것이다.

 ‘먹다’의 존댓말이 ‘잡수시다’ 또는 ‘자시다’이기 때문에 ‘귀를 먹다’의 높임말도 ‘귀를 잡수시다’ 또는 ‘귀를 자시다’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귀를 먹다’에서 ‘먹다’는 음식을 섭취하다(食)는 개념의 단어와는 다른 것이다.

 이때의 ‘먹다’는 귀나 코가 막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다는 뜻이다. “귀를 먹어 잘 듣지 못한다” “코 먹은 소리를 냈다” 등처럼 쓰인다. 높임말은 ‘시’를 붙여 ‘먹으시다’ 형태로 해야 한다. 즉 “귀를 먹으셔서 잘 듣지 못한다” 등과 같이 표현해야 한다.

 “할머니는 귀를 잡수셨다” 또는 “할머니는 귀를 자셨다”고 하면 할머니가 귀를 드셨다(食)는 의미가 돼 망발이나 다름없다. “할머니는 귀를 먹으셨다”고 해야 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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