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현의 시시각각] 도쿄 지진과 조용기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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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한국 교민이 많이 사는 도쿄 신주쿠(新宿)구 가부키초의 순복음도쿄교회. 그제 이곳을 찾았다. 이 교회 창립 34주년을 기념한 ‘축복성회’에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원로목사가 참석해 설교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기독교계 원로인 조 목사에게는 조금 죄송한 얘기지만, 목사님이 도쿄에서는 또 어떤 말로 사고(?)를 치실지 걱정 반, 기대 반을 품고 갔다. 아니, 솔직히 말해 기자인 내 입장에서는 ‘기대’ 쪽이 훨씬 더 컸다. 뭔가 논란거리가 나와야 기사가 될 테니까(이래서 기자들은 애당초 천당 가기 글렀다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비(非)종교인인 나로서는 순복음교회의 예배 풍경이 낯설기만 했다. 축복성회가 열린 성전(예배당)의 위·아래층은 진작부터 신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일본에 있는 교회라는 특성 때문인지 한국어와 일본어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찬송가 가사도 한국어·일본어 자막이 동시에 나왔고, 신자들은 번갈아 두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내가 앉은 자리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두 언어였다. 조 목사가 설교하기 전 한참 동안 찬송가가 이어졌다. 주변에서 다들 박수를 치며 ‘찬양’하는데, 그 가운데 파묻힌 나만 가만히 있기가 쑥스럽고 왠지 미안했다. 그래서 박수도 조금 쳤다.

 조용기 원로목사는 며칠 전 동일본(東日本) 대지진에 대해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 기독교계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다. 수쿠크법(이슬람 채권법)과 관련한 그의 ‘대통령 하야’ 발언과 맞물려 적지 않은 물의가 빚어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은 “교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고, 지진을 계기로 일본 땅에서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말인데 와전됐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축복성회는 오후 1시에 시작됐고, 1시18분쯤 조 목사의 설교가 시작됐다. 일본어 동시통역과 함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교는 지극히 ‘기독교적’이었다. 그는 누가복음 8장 22~25절을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예수가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때 큰 풍랑이 일었고, 겁에 질린 제자들의 호소에 잠을 깬 예수가 물결을 향해 꾸짖자 잔잔해졌다는 내용이다.

 나의 관심은 역시 ‘지진’이었다. 조 목사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이 지구를 저주하셨다”고 했다. “저주받은 지구에는 자연재앙이 오게 돼 있다. 그러므로 일본에 지진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진은 일본에도 있을 수 있고, 한국에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을 배려하는 발언도 했다. “우리가 일본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본을 사랑하는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교 후반에도 “지진은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자연재해는 어디에서나 일어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날 축복성회 도중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두 번 일어났다. 행사 직전인 12시52분, 그리고 시작 뒤인 1시16분이었다. 지진에 동요하는 신도는 거의 없었다. 조 목사도 “어젯밤 (도쿄의) 호텔에 묵고 있는데 지진이 나 흔들리더라”고 했다.

 나는 조 목사의 ‘우상숭배’ 발언이 앞뒤 맥락을 뺀 채 침소봉대(針小棒大)됐을 것으로 믿는다. 순복음도쿄교회에서 한 발언들이 진심이자 ‘정본’이길 바란다. 지진의 원인이 저주 때문인지, 아니면 지각 밑 사정 때문인지, 믿는 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큰 고통을 당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자유를 넘어서는 언어폭력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도 우익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이번 지진을 ‘천벌’이라 했다가 취소하고 사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독교든 불교든 제발 종교인의 발언 때문에 세상이 더 거칠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도쿄에서>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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