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의 비상 ‘라이프라인’은 믿을 만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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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이와테(岩手)현 남부 리쿠젠다카다(陸前高田)시. 인구 2만3200여 명인 도시의 80%가 쓰나미에 휩쓸렸다.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시립 제1중학교 강당 벽에는 커다란 구호가 붙어 있다. “목숨이 남아 있는 것을 기뻐하자.” 그러나 과연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충분한가. 동일본(東日本)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미 1만 명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간신히 살아남아 전국 피난소에서 하루에 물 두세 잔씩 배급받는 피난민이 41만 명이다. 설상가상으로 지진·쓰나미가 할퀴고 지나간 도호쿠(東北) 지방의 어제 기온은 예년의 1월 날씨로 떨어졌고, 눈까지 내렸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일본은 생존자들의 ‘라이프 라인(life line·생명줄)’을 유지·복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피해 지역은 대부분 전기·수도·가스 공급과 기초적인 행정·의료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됐다. 물·음식·연료·담요·휘발유부터 아기용 분유, 화장실 휴지까지 생존·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도쿄 등 대도시에서 중간 거점까지 생활필수품을 보내도 이를 받아 나를 차량과 연료가 없어 태평양 연안 피해 마을에 닿지 못하곤 한다. 도호쿠 지방 대동맥에 해당하는 고속도로(도호쿠도)는 대지진 다음날 자위대원과 소방·경찰관 전용의 ‘긴급교통로’로 선포됐다. 하지만 경직된 행정 탓에 유류를 싣고 급히 달리던 탱크로리들까지 못 가게 막다가 16일에야 허용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피해 지역 주유소에 탱크로리가 도착해도 주유소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주입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전력 부족에 대비한 ‘계획정전’ 대상에 지진 피해지역을 넣었다가 비판이 일자 황급히 취소했다.

 재난 대처 과정은 국가 실력의 바로미터다. 일본은 이중·삼중 대비시스템과 건물·도로·철도 내진 설계, 철저한 안전교육 등 세계 정상급 재난 대비 인프라를 자랑한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동일본 대지진은 예측을 뛰어넘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는 점을 새겨보아야 한다. 같은 재앙이 우리나라를 덮쳤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일본에서 벌어진 혼란과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오히려 나라 전체에 엄청난 대혼란이 빚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일본에서는 특히 많은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쓰나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국도 자연재해에 취약한 농·산·어촌 지역은 일본처럼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

 우리의 재난 대비 인프라, 평소의 안전교육, 라이프 라인 유지·복구 시스템은 과연 믿을 만한가. 이번 기회에 단단히 점검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종전의 안전기준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닐뿐더러 재난 요인은 자연·인공에 걸쳐 다양하다. 천재지변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북한의 핵무기·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는 경우도 재난의 한 형태로 상정해 대비해야 마땅하다. <도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