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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공직자 미키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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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운명은 선택할 수 없으나 운명을 맞이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던가. 자연의 대재앙 앞에 망연자실하면서도 슬픔을 가슴속 깊이 억누르며 참아내는 일본인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다. 비탄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내는 일본인이야말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2500년 전 스토아 철학의 진수를 내면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역경은 감동을 낳는다고 했다. 지금 많은 감동 스토리가 나오고 있지만, 최근 언론에 보도된 한 공직자의 죽음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미야기현 남부 미나미산리쿠 마을의 동사무소 위기관리과 직원 엔도 미키의 이야기다. 그는 쓰나미가 몰려올 때 “빨리 도망치세요. 6m 높이의 파도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쉴 새 없이 대피방송을 하다 결국 쓰나미에 스러져갔다. 25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주민들을 살리고자 마이크를 놓지 않고 최후를 맞은 그의 애잔한 사연은 하나의 잔잔한 감동이다.

 일본이 자신을 덮친 대재난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엔화 강세가 유지돼서도 아니요, 일본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풀어 경기부양을 해서도 아니다. 혼돈 속에서도 침착함과 절제를 잃지 않는 시민정신이 살아있고, 주민들을 위해 마이크를 끝까지 놓지 않는 공인정신이 남아있다는 것보다 재난 극복 의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엔도의 경우 자신을 일개 동사무소 말단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민의 안위를 책임진 최고 공직자처럼 처신한 것이다. 그의 사연을 접하며 과연 공직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라는 다르다 해도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감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직자가 되는 길은 단순하다. 시험 아니면 선거다. 특히 행정고시나 9급 시험을 보면 공무원이 된다. 그 점에선 일반기업의 입사시험과 같다. 그러니 시험에 합격한 것만 갖고 공인의식을 가진 공직자로 가늠할 수는 없다. 이익을 내는 기업이 아닌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 없이 평생 직장에 입성하겠다는 구직의식만으로 공직을 말할 수 있겠는가. 공직에는 단순한 호구지책을 넘어선 어떤 엄숙함이 있다. 공동체를 위해 최후까지 서슴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결연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우리 주변에 과연 그런 공직자가 있는가.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구제역이 창궐했을 무렵 그걸 막기 위해 불철주야 사투를 벌이다 숨져간 공무원이 8명이다. 구제역 방역 중 과로로 쓰러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 그들이야말로 죽기까지 공인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상하이 스캔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는다. 과연 그들에게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최소한의 공인의식이 있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물론 구도자가 아니라 뜨거운 피를 가진 사나이라면 하루에도 밀물과 썰물처럼 수없이 갈마드는 갖가지 유혹을 비켜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먼 이국땅인 만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하여가를 부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으리라. 그러나 영사관은 러브스토리를 만드는 곳도 아니고, 또 국가가 러브스토리를 만들라고 그곳으로 보낸 것도 아니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것이 임무가 아니었나. 그럼에도 국가의 부름과 녹봉을 받는 그들이 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는지 알 길이 없다. 금지된 사랑을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순애보로 칭송 받지만, 금지된 사랑을 했던 영사들의 사연이 허접스러운 이야기로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까닭이 궁금하지 않은가. 또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넘어 나라의 기밀까지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판이니 공직자의 타락이 어떻게 예까지 이를 수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공인의식을 가진 공직자는 정녕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한 존재인가. 행정고시에 합격해 엘리트 의식을 갖는 것이 곧 공인의식은 아니다. 돈에 대한 유혹, 사랑에 대한 유혹, 권력 오남용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국민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정신이 있어야 공인의식이다. 지금 쓰나미 가운데 순직한 일본인 공직자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나라는 다르지만, 생과 사를 가르는 절박한 순간에도 끝까지 주민들을 위해 대피방송을 하다 숨져간 그의 마지막 봉사정신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