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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자업자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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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이번 일본 지진 참사에서 눈에 띄는 현상의 하나는 한국이 큰 거부감 없이 적극적으로 일본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극소수 네티즌이 일본의 횡액을 고소해하는 글을 올리긴 했지만 인터넷의 대세는 ‘고통받는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자’다. 일본과 각 세우기를 즐기던 야당들도 줄줄이 위로 성명을 내고 지원을 촉구했다. 이에 힘입어 정부는 어느 나라보다 먼저 구조대를 보내 일본의 고마움을 샀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시만 해도 열 배 차이가 났던 한·일 간 국력 차가 5배 안팎으로 줄면서 한국이 여유를 갖게 됐고, 일본 민주당 정권의 전향적인 태도로 양국 간 갈등이 적잖이 해소된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각료 전원은 지난해 취임 이래 야스쿠니 신사를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또 일제가 약탈해간 조선의궤를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요인 덕분에 우리 국민들이 진심으로 우러난 마음에서 일본을 돕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전 세계 100여 국가가 앞다퉈 일본 돕기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일본은 그동안 어려운 나라 돕기에 관한 한 세계 5위 안에 드는 큰손이었다. 지난해만도 94억 달러를 대외원조에 써 한국(8억1600만 달러)의 열 배를 넘겼다. 평소 베푼 게 많으니, 아프가니스탄 같은 최빈국조차 자신들에겐 큰돈인 5만 달러를 일본에 쾌척한 것 아니겠는가. 이런 아름다운 모습과 대조를 보이는, 참으로 딱한 나라가 있다. 북한이다. 넉 달째 전 세계에 “굶어 죽을 지경”이라며 대놓고 식량을 구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손을 내민 나라는 하나도 없다.

 독일 외교관은 “한 손으론 쌀을 달라면서 다른 손으론 베를린에서 김정일에게 바칠 사치품을 사들이는 나라가 굶주리는 나라 맞나”라고 반문했다. 영국 관리는 “식량조사단이 북한에 들어가면 뼈만 남은 아이들이 가득한 고아원 같은 곳만 데려가고, 무작위 조사는 불허한다”며 “세계에서 식량 상황을 산정하기 가장 힘든 나라가 북한”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식량 수입량을 올 들어 대폭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국제인권단체들엔 올해 예상 식량 수요량을 예년보다 수백만t 늘려 보고했다. “먹일 입은 늘어났는데 곳간은 더욱 비었다”는 걸 강조해 어떻게든 지원을 얻어내려는 전술로 보인다.

 물론 북한은 배고픈 나라다. 형제인 우리는 북한 주민의 허기를 덜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식량이 정말로 얼마나 부족한지, 또 지원된 식량이 진짜 배고픈 주민들 입에 들어갈 것인지 따져보지 않고 ‘묻지마’ 식으로 줬다간 북한 당국의 모럴 해저드만 키워줄 뿐이다. 그동안 북한의 소행을 보면 굶주리는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성대국’ 파티용이나 군량미로 빼돌릴 개연성이 다분하기에 어느 나라도 선뜻 식량을 줄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닌가.

 일본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국제사회가 앞다퉈 지원에 나선 건 지진으로 인한 피해 전모가 투명하게 공개됐고, 지원한 물자들이 딴 데 쓰이지 않는다는 신뢰가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말 배고픈 백성들을 위해 식량을 지원받겠다면 이런 전제부터 충족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