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나선 한국노총,임금체불하고 경제계에 "생활고 해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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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은 최근 단행한 인사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과 국토해양부 장관 특별보좌관을 지낸 이정식씨를 사무처장 겸 정책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이는 겉으로는 정부·한나라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물밑으로는 정부와 대화하려는 속내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씨가 한국노총 홍보본부장 등을 지냈지만 오랜기간 정부 내에서 일하며 정부와의 다양한 비공식 대화채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현재 한국노총은 정부를 외면하거나 싸움상대로만 삼을 수 없는 사정도 있다.

한국노총은 지금 돈에 쪼들려 있다. 지난해 기업노조에서 한국노총에 파견나온 전임자들의 임금을 경제단체가 100억원대의 후원금을 거둬 보전해주기로 했다. 이런 편법에 국민들이 강하게 비판했지만 정부와 경영계는 강행했다. 그러나 2개월 전부터 이 후원금이 뚝 끊겼다. 투쟁을 내세우니 당연한 조치였다. 경영계가 돈 주고 빰 맞는 행동을 할 리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노총 파견전임자 120여 명의 임금이 체불됐다. 전국 노조의 대표자인 노총으로선 치욕스런 일이다. 하지만 돈줄이 없으니 풀 방법도 없다.

한국노총은 결국 한나라당에 노총 내 파견전임자 임금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촉구하는 굴욕을 감내했다. 파견전임자의 임금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을 접고 경제계에 압력을 넣어 후원금을 넣도록 하라는 것이다. 역시 편법이다. 경제계에도 "파견자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 경제단체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간청어린 주장을 한다. 이럴 정도로 한국노총은 다급하다.

특히 조합비로 운영되는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은 전체 예산의 상당부분을 국고보조금(25억~30억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 정부보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2005년 김대환 노동부장관 당시 한국노총 전 위원장이 횡령한 보조금을 내놓지 않자 국고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이 또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노총의 운영예산이나 종사자의 월급이 국고나 경영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전 한국노총 간부의 토로는 한국노총이 정부와 마냥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는 상황을 설명해준다. 노총 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투쟁하는 양상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겉과 속이 어떻게 흘러갈 지 관심을 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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