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법까지 바꿔 로비 수사 막겠다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청목회 면죄부 법안’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를 통과하자 “불법을 저지른 동료 의원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등의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현역 의원 6명이 1심 판결을 받기 전에 국회에서 법을 바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4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10분 만에 전격적으로 가결됐다. ▶<본지 3월 5일자 2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에 청목회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선 “한심스럽다”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 검찰 고위 인사는 6일 “의원들이 법까지 바꿔 수사를 무력화하려 한다면 검찰은 아무 것도 못하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청목회 사건을 담당한 서울북부지법은 법안이 국회에서 최종적으로 처리될 때까지 청목회 사건 재판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행안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심사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한나라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청목회 로비 면제법’이자, 국회의원이 받은 돈을 치외법권 지대로 설정한 ‘방탄용 특례법’”이라며 “법사위에서 법안을 폐기시키겠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인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된 이상 행안위가 정치자금법안을 기습 처리한 것은 월권”이라 고 비판했다. 같은 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정치자금법 개정은 후안무치한 일”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그럼에도 여야 지도부는 이번 주 중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3월 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깨끗한 정치를 위해 ‘소액다수 후원이 좋다’는 차원에서 여야가 (처리키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청목회 면죄부 법안’ 기습처리의 주역은 김무성·박지원 원내대표와 안경률 행안위원장 및 양당 간사인 김정권(한나라당)·백원우(민주당) 의원이다. 두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새해 예산안을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 내에 처리키로 하면서 청목회 입법로비 수사를 받던 의원들을 면책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시 의원들에 대한 기업 후원금 전면 허용 등의 ‘독소조항’이 언론 보도(본지 2010년 12월 2일자 12면)로 알려지며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여야는 법안 처리를 잠시 유보했다. 그러다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의원들의 1심 재판이 4월로 잡히자 이번에 기습 처리했다. 여야는 정치 관계법안을 심의할 정치개혁특위를 출범시켜 놓고도 법안을 특위가 아닌 행안위를 통해 ‘변칙 처리’하는 수법까지 썼다.

 행안위 기습 처리 방침은 김·박 원내대표와 안 위원장, 그리고 양당 간사만이 아는 상황에서 비밀스럽게 정해졌다. 행안위는 4일 오전까지 일정에 없었던 정치자금개선소위를 오후에 소집해 핵심 내용을 고쳤다. 이어 오후 3시30분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안 위원장은 의사일정을 변경해 개정안을 기습 처리했다. 이날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참석했지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민주노총 등 노조 후원금을 고려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여야의 뻔뻔스러운 야합’이란 비난이 쏟아지자 당사자들은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 위헌 소지가 있는 조항만 개정했을 뿐”이라고 말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민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안경률 위원장은 “위원장이 주도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김정권 의원은 “여야 원내대표가 (처리에) 합의한 것”이라고 했다.

김승현·정효식·강기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