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린 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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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호 11면

봄비가 사뭇 많이 왔습니다. 비 마중이 바쁩니다. 농사를 짓는 이들은 항상 일기예보에 귀를 세웁니다. 특히 요즘처럼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시절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미 부지런히 비료와 퇴비를 뿌리고, 흙을 뒤집은 이는 한결 느긋하게 들판에 나가 봄비를 맞이합니다. 이제라도 비옷을 입고 들판에 나가 땅을 뒤엎는 이는 빗물이 땀과 하나 되는 노동으로 봄비를 맞이합니다. 때를 맞추면 쉽고, 때를 놓치면 힘드니, 하늘의 시간을 일구는 것이 농사입니다. 봄비는 영양분을 가득 품고 땅 구석구석으로 스며듭니다. 이내 심을 고추며, 토란이며, 콩을 튼실하게 키워 낼 겁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봄비를 실컷 쏟아낸 비구름이 하늘로 오릅니다. 비구름도 제 할 일을 다 하고 떠나갑니다. 게으른 한량은 제 할 일은 팽개치고 멀찌감치 서서 비 구경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에 부푼 매화 꽃망울이 터지길 목 빠지게 기다립니다. 봄비를 참으로 요상하게 맞이합니다.
그러나 때는 늦어도 할 일은 해야 얻어먹을 것이 나옵니다. 매화나무 전지나 퇴비는 늦게라도 꼭 할 참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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