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남권 신공항, 경제논리로 결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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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분열과 대립이 극(極)으로 치닫고 있다. 또다시 나라가 갈기갈기 찢기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될 정도다. 같은 당의 국회의원들조차 세(勢)가 갈려 상대방을 비방하고 있다. 망언(妄言)이란 말까지 오간다. 지자체와 주민 간 갈등은 더하다. 릴레이 삭발을 결의한 곳도 있다. 지역 발전과 생계 문제가 걸려 있는 지자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정말 한심하다. 출신 지역과 표심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국가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할 책무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 국익을 위해선 지역 희생도 필요하다며 주민을 설득해야 할 의원들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한심하기는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시대의 정부가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갈등 해소다. 조정과 중재를 통해 국민을 한 방향으로 이끌 책임이 있는 정부가 오히려 문제를 질질 끌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은 이 정도로 분란이 일 사안은 아니었다. 순수한 경제 논리로 접근했으면 진작 풀릴 문제였다. 신공항이 과연 필요한가, 김해국제공항으로는 안 되는가에 대한 경제 분석을 하면 된다. 정부는 4년 전에 이런 조사를 했다. 지금의 김해공항으론 안 된다고 했다.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 역시 수지 타산이 맞지 않기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결론도 내렸다. 남은 문제는 어디에 지을 것인가다. 이것 역시 해결하기 어렵지 않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두 곳의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해 실효성이 높은 쪽을 선정하면 된다. 이 문제에 대한 답 역시 정부는 2년 전에 이미 내놓았다. 두 곳 다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질질 끌 필요가 없었다. 진작 백지화를 선언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재검토하면 될 일이었다. 아무리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수많은 ‘실패의 추억’들을 갖고 있다.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인들의 허황된 공약에 휘둘려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사회간접자본(SOC)들을 수없이 많이 목격했다. 공항만 해도 무안·청주·양양·포항·울진 등 여럿이다.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거나 정기 노선이 아예 없으며 1주 2~3편만 국제선 비행기를 띄우는 공항들이다. 이 때문에 낭비되는 세금이 지금도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을 정치 논리로 휘두른 탓이다. 또다시 이런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현재 진행 중인 타당성 조사와 평가를 매우 엄정하고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달 말에 결과가 나와도 갈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부 차원에서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과거의 조사 행태를 답습해선 안 된다. 이해관계가 서로 상반되는 정치인과 지자체 인사들도 조사·평가 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길 당부한다. 평가단에 일임했으니 결과를 기다려달라는 건 안이한 태도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갈등 해소에 나서야 국민의 마음을 산다. 그런 지도자라야 분열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