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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비정규직 상생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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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기원
내셔널 차장

“정규직이 승용차 한쪽 바퀴를 달 때 비정규직은 반대쪽 바퀴를 다는 식이죠. 누구 일이 더 전문적이거나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해 비정규직이 더 열심히, 그리고 정규직이 거부하는 힘든 일까지 군말 없이 한다고 보는 게 맞지요.”

 현대차 울산공장 21년 경력의 정규직 근로자가 털어놓은 얘기다.

 그런 비정규직, 더 정확히 사내하청 근로자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해고 걱정 때문이다. 봉급도 정규직의 75%에도 못 미친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300인 이상 제조업체 근로자의 24.6%인 32만5932명이 이런 비정규직이다.

 “투싼 생산라인은 주문량을 맞출 인력 확보가 안 돼 쩔쩔매는데, 시설보수 공사로 한가해진 엔진 공장의 600여 명 종업원은 장기 유급휴가 중입니다. 같은 울산공장 안에 있어도 노조에서 ‘노(No)’하면 부서이동은 물론 임시파견도 불가능하니까요.”

 2일 현대차 인사팀에서 나온 얘기지만 노조 측도 이를 시인했다. 정규직만 있으면 구조조정은 물론 시장변화에 맞춰 탄력적인 인력운용이 힘든 게 현실이다. 현대차와 경쟁하는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GM·포드·크라이슬러 등이 모두 고용 유연성을 위해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있다. 자칫 현대차만 국제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깔아뭉개고 갈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다. 비정규직의 가슴에 응어리 맺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도록 해서도 안 된다.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조업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용비율을 정해두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에서 선발하도록 제도화하면 된다. 업체는 일정 비율의 비정규직을 유지하며 고용유연성을 갖고, 비정규직은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주자는 것이다.

 부분적이지만 이미 선례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생산직에 한해 10여 년 전부터 기술교육원→비정규직(사내협력업체)을 거쳐야 정규직으로 뽑는다. 현대차는 2000년에 전체 근로자의 16.9%를 비정규직으로 하기로 노사가 합의(완전고용보장합의서)했다.

그러자면 법적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제조업체에 비정규직 직접고용의 길을 터주거나, 파견근로자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제조업체를 파견근로자 사용 금지(파견근로자법 제5조)로 억누른 결과 사내하청업체에 도급을 주는 형태로 빠져나가는 풍선효과만 낳았다. 사내하청 근로자도 파견근로자처럼 비정규직이긴 마찬가지지만 근로자 보호 측면에선 천양지차다. 박현갑 변호사는 “도급은 노동법과 무관한 민법이어서 파견근로자법상 보장된 ‘동일노동 동일임금’,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으로 전환 의무’를 안 지켜도 된다”고 말했다.

 약자보호를 명분으로 만든 법을 뜯어고치기엔 정치적 부담이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되레 역효과만 커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면 책임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이기원 내셔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