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경영] 제 1화 ⑨ 남미 정글 숲을 헤친 우리 제약기술과 청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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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오른쪽에서 둘째)이 멕시코 휄신사를 방문해 항생제 합성기술을 수출하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보령제약은 생약제제의 잇따른 성공과 ‘겔포스 신화’를 바탕으로 창업 후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우리는 점차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만으로는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제약회사로 거듭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첫 수출 상품은 ‘고려인삼차’였다. 77년 6240달러어치, 1200상자를 서독에 수출함으로써 세계시장 진출의 첫 물꼬를 터 총 5만여 달러어치를 유럽과 미국 등지로 수출했다.

 당시 원료 의약품 개발은 77년부터 시작된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분야였다. 이에 따라 많은 제약회사가 원료 의약품 생산과 이에 필요한 기초적인 원료 합성에 주력했다. 해당 기술을 축적하고 약품의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앞서 보령제약은 74년부터 원료 의약품 합성 연구에 착수해 78년 앰피실린 합성에 성공했다. 독자적으로 항생물질 합성을 해낸 것이다. 그러나 초기 기술이 완벽하지 못했던 탓에 앰피실린 공장 준공 후 하루 생산량은 18㎏에 불과했다. 그나마 새벽 2~3시까지 매달려야 얻을 수 있는 양이었다. 당시 직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앰피실린 생산 실적은 급속히 올라갔고, 보령제약은 치료 의약품 제조업체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79년 보령제약은 멕시코 제약회사인 휄신에 앰피실린을 비롯한 3종의 항생물질 합성 기술을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국내 제약업체로는 처음으로 합성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완제품 대신 외국 기술을 도입해 자체 기술로 발전시킨 끈기와 집념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휄신은 멕시코 북쪽 산업도시 몬테리에 있는 회사로, 원료 의약품만을 전문으로 합성하는 제약회사로 유명했다. 특히 하루 450㎏에 달하는 앰피실린을 생산해 멕시코 자국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중남미 제1의 원료 생산 메이커로 군림하고 있었다. 수출 계약을 한 다음해인 80년 보령제약은 멕시코 현지로 두 명의 기술진을 파견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의 기술 지도를 통해 합성에 성공함으로써 보령제약의 앞선 기술을 과시했다. 합성 성공을 알리는 전화를 받기까지 초조한 마음에 나는 거의 일주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보령제약은 물론 국가적인 망신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합성 성공을 알리는 현지 우리 기술자의 전화를 받은 후 나는 애써 흥분을 감추고 물었다.

 “어디 불편한 덴 없어요?”

 그러자 그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청국장을 먹고 싶습니다!”

 나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고요?”

 “모기 때문에 온몸이 가려워 죽을 지경입니다. 정글을 지나다가 독충에게 물린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 가서 청국장 먹으면 다 나을 거 같습니다!”

 성공적인 멕시코 진출로 우리는 남미에 기술을 수출한 첫 대한민국 제약기업이 되었다. 이후 다른 제약사들이 남미 지역에 진출하는 데 나름대로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최근에 우리가 국내 최초로 고혈압 신약 카나브를 개발해 처음 해외 진출을 이룬 나라가 멕시코인데, 유독 인연이 깊은 나라가 아닌가 싶다.

 이어 겔포스를 대만에 수출하면서 의약 완제품 수출 길을 열었고, 싱가포르·일본·말레이시아·중국으로 시장을 넓혔다. 81년에 태국, 83년 인도에 항생제를 수출했다. 이에 힘입어 84년 수출유공자 표창과 ‘1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80년 국내 최초로 항생물질 합성 기술을 멕시코에 성공적으로 수출하고 돌아온 날, 두 명의 기술자와 함께 나는 동대문 부근의 단골집에서 구수한 청국장을 먹었다. 오래도록 현지에 있던 두 직원은 청국장 두 그릇씩을 단숨에 비웠다. 나는 지금도 그 청국장 맛을 잊을 수 없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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