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언제 한번 봐요” … 손학규 “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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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장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만났다. 이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념식에 앞서 환담장인 대기실에 들어서면서 대기 중이던 정·관계 인사들 중 손 대표에게 가장 먼저 악수를 청했다. 이 대통령은 “안녕하십니까”라고 했고, 손 대표는 “건강하시죠”라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언제 한번 봐요”라고 하자 손 대표는 “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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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대표=헬기가 뜨지 못해 (1일 예정했던) 독도에 가지 못했어요. (청와대 인사가 독도행 취소를 묻자)

 ▶이 대통령=비바람 칠 때 헬기 타지 마세요. 위험해요. (이어 테이블의 케이크를 덜어 직접 손 대표에게 건네며) 내가 손학규 대표 잘 모셔야죠.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손 대표=그렇습니다.

 ▶이 대통령=(우리가) 정치만 안 했으면 되게 친했을 텐데 (정치를 하기 때문에) 마음에 없는 얘기도 하고 그래서…허허허.

 이에 손 대표는 살짝 웃기만 했을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함께 있던 박희태 국회의장이 “두 분은 과거부터 가까운 사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도 “조건을 걸지 말고 무조건 만나야죠”라며 거들었다. 손 대표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는게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풍경이다. 민주당 측에선 손 대표가 이 대통령이 건네준 케이크엔 손대지 않고 커피만 마셨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민주당 측은 지난달 이 대통령과 손 대표의 회담을 추진하다 그만뒀다. 조건 문제로 티격태격했고, 서로의 진정성도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날 짧은 만남이 이뤄졌고,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대통령이 “한번 보자”고 한 데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여야 영수회담을 직접 제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기념식이 끝난 뒤 청와대나 민주당 측에선 모두 “공식 제안이 아니었다”며 무게를 싣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오늘 나눈 인사말로 대통령이 청와대 회동을 제안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다만 지난달 이른바 ‘영수회담’이 무산되며 다소 냉랭했던 손 대표와의 관계를 오늘 만남으로 어느 정도 풀었다고는 볼 수 있다”고 했다. 환담장에 배석했던 민주당 양승조 대표 비서실장도 “이 대통령이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것으로 본다”며 “손 대표는 그 자리에서 ‘네’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측이 이를 영수회담 제안으로 간주하지 않는 이유는 지난번의 회담 추진이 무산됐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2011년 예산안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된 것과 관련해 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해온 손 대표가 다시 영수회담을 추진하면 성사의 조건으로 대통령 사과를 들고 나올 걸로 예상한다. 손 대표 측은 청와대의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 “영수회담을 통해 야당의 목소리를 듣고 국정운영에 반영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게 민주당 당직자들의 판단이다.

채병건·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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