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제역 진압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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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구제역으로 인한 민심이 흉흉하다. 지난 70여 일간 31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4000여 곳에 매몰됐고, 직접적인 피해액만 1조원을 넘어섰다. 안이한 초동대처와 도덕적 해이라는 인재(人災)에다 강추위로 소독약마저 얼어붙은 천재지변이 빚어낸 대형 참사다. 더 큰 문제는 불신(不信)과 공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근시안적 대책이 반복되면서 2차 재앙의 공포심을 낳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 가축 매몰지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으로 탄저병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정부는 환경 오염 가능성을 일단 낮게 보고 있다. 그러면서 어제 부랴부랴 매몰지 주변에 자동경보시스템을 도입하고 보강공사를 실시하는 등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가 매뉴얼대로 제대로 살처분만 했다면 아예 이런 후폭풍은 불지 않았을 것이다. 급한 김에 경사지나 하천 주변에까지 산 채 묻는 바람에 생매장된 가축들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매몰지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핏물이 도랑을 타고 작은 강줄기를 이룬 듯한 충격적인 사진이 사이버 공간에 떠돌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낙관론을 믿고 싶다. 날씨가 풀리고 소독약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서 구제역 확산에 제동이 걸리길 바란다. 정부가 다짐한 대로 가축들의 사체가 부패되기 전에 매몰지 주변에 차수벽(遮水壁) 설치 같은 보강공사를 끝내 2차 재앙을 막길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대책으로 우리 사회의 불신과 공포를 걷어내기에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만의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청와대가 구제역 진압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 자칫 구제역 재앙이 제2의 광우병(狂牛病)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당시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10억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과학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온 나라가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설사 구제역 2차 재앙으로 탄저병 같은 치명적 전염병이 돌 확률이 수백억분의 1에 불과할지라도 우리 사회에 어떤 충격파를 몰고 올지 모른다. 구제역 사태를 통해 이미 행정안전부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는 ‘못난이 삼형제’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이제 청와대가 직접 최일선에 나서야 할 때다.

 우선 전국의 가축 매몰지를 전부 파악해 지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구제역 공포가 해소될 때까지 매몰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즉각 알려야 한다. 그래야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괴담(怪談)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와 방역당국의 발표를 못 믿는 국민이 적지 않다. 구제역 대책팀에 보건·환경·위생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도 대거 포함시켜 국민의 불신을 걷어내야 한다. 이미 구제역 사태는 축산농가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시중에는 쇠고기·돼지고기 값이 치솟고, 햄 통조림마저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구제역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것이다. 청와대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구제역 사태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