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과학벨트 갈기갈기 찢는 솔로몬 재판 될까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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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국가와 정치, 권력의 든든한 후원 없이 과학 연구가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다. 권력의 ‘선한 개입’이 과학 혁명을 낳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과학 국책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도시) 사업이 입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좌담 방송에서 ‘충청권 입지’를 백지화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과학도시는 6년 전 꿈꾸기를 좋아하는 한 핵물리학자의 기획에서 비롯됐다. 그는 “137억 년 전 우주 탄생의 신비를 밝혀보자. 한국에서도 노벨과학상이 나와야 할 것 아니냐”며 중이온가속기가 설치된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를 설계했다. 은하도시 설계안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소개됐고, 2007년 국제과학비즈니스도시란 이름으로 한나라당 대선공약으로 채택됐다.

이 핵물리학자가 민동필(64·사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이다. 민 이사장은 과학도시에 인생을 걸었다. 2008년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이명박 정부에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 이사장을 6일 만났다.

- 이명박 대통령은 과학도시 선정에 과학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과학도시는 기초과학의 연구환경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한국을 21세기 과학선진국으로 만들자는 국가적 과업이다. 지역경제 살리기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곤란하다. 이 때문에 지역 대립이 격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역공모제도 갈등만 부추길 것이다.”

- 대립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학벨트특별법에 나온 대로 하면 된다. 과학자와 관련 분야 전문가, 특히 해외 전문가가 다수 포함된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위원회가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하면 될 것이다.”

MIT·하버드 기초연구 인프라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 상상도.

- 이 대통령이 ‘충청권 백지화’를 밝힌 것으로 봐도 되나.

 “그건 제가 알 수 없고…. 정부 일각에서 과학벨트니까 이걸 쪼개서 각 지역에 조금씩 나눠 주자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 갈기갈기 찢어지면 과학자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서로 제 아이라고 주장하는 솔로몬의 재판같이 될까 두렵다.”

- 과학도시가 들어서기 좋은 환경은 어떤 곳인가.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제 발로 찾아와 연구하고 싶은 환경이 돼야 한다. 외국인 연구자 약 1500명을 포함, 2500명의 박사급 연구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주거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

- 우리나라에는 무(無)에서 창조한 산업 부문이 많다. 땅만 있으면 기존의 인프라 문제는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21세기 세계 경쟁 무대에 서려면 그저 창조적인 정도론 안 된다. ‘수퍼 창조적인(super-creative)’ 연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수준의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창조적 정신의 발휘를 기대할 수 없다. 하버드나 MIT의 기초연구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 입지 논란을 좁혀보면 ‘충청도냐 아니냐’다. 세종시-대덕-오송-천안 등 충청도 입지론은 어떤가.

 “과학도시 성공에 중요한 요인은 토지 확보다. 120만 평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세종시의 장점은 국가가 토지를 확보하고 있어 언제라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을 많이 허송해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 건설을 하루빨리 착공해야 한다. ”

- 쪼개서 나눠 주기, 즉 분산이 과학자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했다. 왜 그런가.

 “소통·융합·통섭이라는 21세기 과학의 방향과 어긋난다. 분산시키면 전문 분야의 벽을 넘기 힘들다. 창조와 혁신은 그때 그때 생각날 때 가볍게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이른바 ‘카페테리아 소통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카고의 페르미연구소나 MIT의 미디어랩을 봐라. 동료 연구실을 지나가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끌려들게 하고,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가볍게 미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

- 과학도시 성공을 위해 입지 외에 필요한 것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행정·산업·도시·환경·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는 강력하고 감동적인 추진 체계가 필요하다.”

- 국민이 할 일은.

 “시간을 갖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일본 쓰쿠바시의 경우 과학도시를 만들기 시작한게 1960년대 초반이었는데 2000년이 돼서야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기초과학 투자는 이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져야 한다. 과학도시에 대한 관심은 차기, 차차기 정권에도 계속돼야 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우주 탄생의 신비를 탐색하는 중이온가속기와 국제적인 석·박사급 두뇌 1500명을 유치하는 기초과학연구원을 구비한 과학도시다. 원천기술을 생산해 산업화하는 비즈니스 단지가 들어 있고, 인접 도시들과 기능적인 연결이 있어 벨트라는 말이 붙었다.

전영기 편집국장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교수
[現]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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