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놀고, 관광도 하고, 영어연수까지 하는 1000만원짜리 알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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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1000만원짜리 '신(神)의 알바'가 화제다. 아르바이트 자리인데도 경쟁률이 2200대 1에 달한다.

알바천국(www.alba.co.kr)과 호주 빅토리아관광청이 주관하는 '천국의 알바, 펭귄 먹이주기'아르바이트가 그것이다. 이 아르바이트는 호주의 필립 아일랜드(멜버른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관광지)에서 한 달 동안 펭귄•코알라와 같은 동물을 돌본다.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에 주5일 근무한다. 여기에다 스모킹 타임(일종의 휴식시간으로 30분)과 같은 호주 정부가 규정한 노동법 상의 근로자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다. 물론 관광은 덤이다. 영어연수효과라는 또다른 보너스도 이 아르바이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월급여가 1000만원이다. 시간당 10만원이 넘는다. 이러다보니 알바생으로 뽑힌 학생들을 두고 인터넷에선 '국회의원 딸이니?' '토익 900점 이상, 학점은 4.0이상의 모범생인가?'라는 시기어린 댓글이 줄을 잇는다.

알바천국은 이달 1일 이 아르바이트를 할 2기생을 뽑았다. 이들은 벌써 호주로 갔다. 지금쯤 동물을 돌보고, 관광을 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두둑한 호주머니는 마음마저 여유롭고 풍요롭게 해 줄 법하다.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 이 알바를 했던 1기생 4명을 만나봤다. 정대위(상명대 생명과학과), 이다인(여•서강대 영미어문학과), 김재완(여•충북대 수의학과), 유승범(국민대 자동자공학과)씨가 그들이다.

◇"면접관 앞에서 낙법쳤죠."

왠만한 회사의 입사 뺨치는 과정을 거친다. 시험기간만 한 달이다. 1차 서류전형, 2차 블로그 미션에 이어 3, 4차는 면접이다. 수 천대 1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최대한 자신을 잘 드러내고 표현할 줄 알아야한다. 면접 때 ‘펭귄의상’을 입고 온 사람도 있었고, 랩을 부르거나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고교 시절 유도선수였던 정대위씨는 “의자를 심사위원 앞에 가져다 놓고 공중제비를 해서 낙법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코알라를 돌보려면 나무 위에 올라가야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의 선택은 맞아떨어졌다. 면접관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3차 면접을 어렵사리 통과한 그는 4차 면접에서도 심사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한 번 더 낙법을 쳤다.
김재완씨의 면접 준비도 만만찮았다. 그녀는 “2주 동안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다. 면접에 나올 만한 것을 무조건 질문하게 하고, 답하는 식으로 모의면접을 생활화(?)했다. 나올 수 있는 질문은 거의 걸러냈다”고 말했다. 실제 면접 때 나온 질문은 그녀가 준비한 면접질문은행과 일치했다. “호주의 면적은?” “호주와 한국의 지형적 차이는?” 등 전문적인 정보가 들어있었던 건 물론이다. 이다인씨는 ‘펭귄도감’을 외우다시피했다.

◇“코알라 똥에서 허브향이 났어요.”

이들이 하는 일은 ▶펭귄 집 지어주기 ▶코알라가 먹는 유칼립투스 나무심기 ▶캥거루풀 심기 ▶고양이와 여우를 잡기 위한 덫 확인하기 등이다. 유승범씨는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나무의 잎을 먹어서인지 똥에서도 허브향이 났다”라고 말했다. 손으로 코알라의 똥을 만지고 서로의 코에 갖다 대 맡아 보기도 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일과시간이 끝나면 이후는 자유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쉴 틈이 없다.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관광청에서 버스비•기념품•식대 등 관광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대줬다. 김재완씨는 “쇠고기, 돼지고기, 캥거루고기 등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시키기만 하면 됐어요. 인근의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을 할 수 있었고, 주말에는 멜버른에 여행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하고 온 게 아니라 놀다온 것 같다'고 했더니 정대위씨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몸으로 체험하고 왔을 뿐”이라고 웃는다.

◇펭귄 퍼레이드를 아시나요?

김재완씨는 어릴 때부터 40여 마리의 동물을 키웠다. 그가 키운 개만 13마리이다. 잉꼬•고양이•햄스터•닭 등 그녀의 집은 흡사 동물원 같았다. 그래서 수의학과에 입학한 것 같다. 동물에 익숙한 그녀지만 호주에서 그녀의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수 천 마리의 펭귄이 바닷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펭귄 퍼레이드’를 매일같이 벌이는 것이었다. “호주에서는 펭귄을 만질 수 없어요.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의자에 앉아 바라만 볼 뿐이죠. 호주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해요. 동물이 자연스럽게 살아갈 환경을 제공하는 거지요. 인위적으로 동물의 세계를 건드리려 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듯 동물을 가둬두고 기르던 김씨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 천대 1도 뚫었는데…자신감은 덤이죠."

이다인씨는 “아직도 펭귄 꿈을 꾸고 있어요. 정식으로 취업할 때 이력서에 1000만원 알바 경험을 꼭 기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에게선 수천대 1의 경쟁률을 뚫은데다 이색 아르바이트로 생각의 지평을 넓힌데 대한 만족감이 풍겼다. 유승범씨는 “코알라똥을 연료로 하는 자동차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라며 밝게 웃었다. 기발한 발상을 자신있게 얘기할 정도로 이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학생 모두에게서 자신감이 넘쳤다.

온라인 편집국=김정록 기자 ilro12@joongang.co.kr
허진 기자 slhu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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