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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결정, 안 하나 못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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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홍권삼
사회부문 차장

“적절한 시점에 시장인 내가 ‘용단’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라.”

 김범일 대구시장이 지난 4일 비공개로 열린 동남권 신공항 추진전략회의에서 간부들에게 한 지시다. 시 관계자는 “정부가 약속대로 3월까지 신공항 입지를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 시장이 시장직 사퇴, 한나라당 탈당 등 극약처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10일엔 대구 지역 시민단체들이 ‘신공항 밀양 유치 결사(決死)추진위원회’도 만들었다.

 대구의 관심은 온통 신공항에 쏠려 있다. 웬만한 건물마다 ‘동남권 신공항 최적지는 밀양’ ‘신공항은 밀양으로’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재 대구·울산·경남·경북 등 4개 광역자치단체는 경남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신공항 후보지로 밀고 있다.

 대구가 신공항 유치에 목을 매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대구의 지난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346만9000원(잠정치)으로 전국 평균(2187만원)의 61.6% 수준이다. 1993년 이후 전국 16개 시·도 중 줄곧 최하위권이다. 대구 경제의 버팀목이던 섬유업이 중국에 밀려 무너진 탓이다. 청구·우방·보성 등 ‘빅3’ 주택건설업체도 외환위기를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시는 국가과학산업단지·테크노폴리스·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기업 유치가 지지부진하다. 열악한 접근성 때문이라고 한다. ‘하늘 길’이 열려야 경제도 풀린다는 것이다. 대구가 30여 분 거리에 있는 밀양을 미는 까닭이다. 반면 부산은 “해안인 가덕도가 최적지”라고 주장한다. 소음 문제가 없어 24시간 운항이 가능하고, 해안공항 건설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도 내세운다.

 대구 등 4개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다음 달 밀양에서 5만 명이 참가하는 집회를 연다. 부산도 서울에서 ‘공항포럼’을 여는 등 가덕도 선정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박광길 밀양신공항유치추진단장은 “정부가 입지 선정을 세 차례나 미루면서 진흙탕 싸움이 확산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와중에 “밀양이든 부산이든 탈락한 지방의 민심이 확 돌아설 것이 뻔하므로 내년 총선·대선을 앞둔 정부가 입지 선정을 미루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 비록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긴 하지만, 아예 신공항 계획 자체를 보류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다. 국토해양부도 청와대 눈치를 살피느라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한다.

 한국항공대 허희영(항공경영학) 교수는 “입지 선정이 정치 논리에 휘말리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경북 울진공항의 교훈을 강조한다. 당초 수요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정치권의 입김에 밀려 1300억원을 쏟아부었다. 결국 개항도 못한 채 10년 만인 지난해 비행교육훈련원으로 바뀌었다. 밀양이든 부산이든 아니면 신공항을 포기하든 객관적·합리적 잣대로만 결정된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만일 정치논리에 휘둘린다면 두고두고 더 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홍권삼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