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만들어 학술대회 연 고교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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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윤화(서울국제고2)·김지현(상산고2)·김지환(한영외고2)·김겸(청심국제고2)·박인혜(상산고2). [서계호 대학생 사진기자 (후원 : canon)]


5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4.18기념관에선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고등학생들이 만든 사회과학 학술단체 ‘한국 청소년 사회과학 학회’가 개최한 제1회 청소년 학술대회였다.

 이 대회에서는 ‘정보사회와 청소년’을 주제로 고등학생들이 쓴 10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스스로 경험하고 느낀 인터넷에 대한 생각을 학술적으로 발전시켜 작성한 논문들이었다. 전주 상산고 2학년 김지현(18)양 등 3명은 ‘왜 그들은 알몸 동영상을 찍었는가’라는 논문을 통해 인터넷 엽기문화가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서울국제고 2학년 최윤화(18)양은 타블로 학력논란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완전 실명제의 효과를 연구했다. 최양은 게시글을 올릴 때 완전 실명을 써야 하는 ‘네이트’와 가명을 사용하는 ‘다음’에서 타블로 논란이 어떻게 다른 양상을 띠며 발전했는지를 추적했다. 지난해 7월께 가수 타블로 학력 위조 논란이 시작됐을 때 타블로를 옹호하는 글이 네이트에서는 29%, 다음에서는 14%였다. 타블로의 결백이 밝혀지고 난 지난해 10월께 그를 옹호하는 글이 네이트에서는 97%, 다음에서는 80%로 늘었다. 최양은 서울 시내 6개 중고등학생 8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30% 이상이 악성댓글(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홍규 한국정보사회학회장은 “청소년들이 사회과학 학술대회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일”이라며 “논문 내용도 대학원생 석사논문에 못잖게 탄탄하고 참신했다”고 평가했다.

 학회는 서울 한영외고 2학년생인 김지환(18)군이 중학교 친구 3명과 함께 뜻을 모아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세계적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세계정보통신학회(ITS) 정기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유일한 고등학생이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인 아버지 김성철씨로부터 약간 도움을 받았지만 최종 집필은 자신이 맡았다. 김군은 학회를 창립한 뒤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문을 공모했다. 그는 “국어나 수학 등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주제를 정해 자료를 찾아 파고드는 자기주도적 학습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서계호 대학생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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