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런 식의 기업 매각, 다시는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현대건설 매각 문제에 대해 엊그제 법원은 채권단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건설 매각 협상을 현대그룹이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과 벌여도 좋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현대그룹은 크게 반발하며 항고나 본안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이후 전개된 양상은 진흙탕 속의 개싸움을 연상케 한다. 현대그룹과 채권단, 현대차와 현대그룹, 채권단과 현대차 간에 온갖 협박과 제소가 난무하며 드잡이가 벌어졌다. 현대건설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관리할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 당국은 이 같은 소동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했다.

 오죽하면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린 직후 별도로 ‘재판부의 소회’란 글을 통해 모두 다 비판했을까. 채권단에 대해선 “무원칙적이었고 오락가락했으며 무리한 자료제출 요구를 했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은 “양해각서에 정해놓은 대로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도 이행하지 못했다”고 했고, 현대차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대체로 맞는 지적이다. 여기에 금융감독 당국의 보신주의적 행태도 추가돼야 한다. 감독당국은 매각 방식을 시장에만 맡긴 채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대건설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구(舊)사주의 참여 제한 문제와 인수자의 인수 능력 등에 대한 기준이 확실했더라면 이런 막장 드라마는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매각 차익에만 눈이 멀어 이 같은 문제들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은 채권단의 무책임도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림이 한참 일그러졌지만 지금이라도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 현대그룹이 불복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해야 한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은 매각 작업을 원점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4년 기다린 문제를 몇 달 더 끈다고 해도 큰일 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현대건설 자체가 지금은 혼자서도 잘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아 보인다. 채권단이 현대건설을 하루라도 빨리 현대차에 넘기고 싶어 안달하기 때문이다. 설사 채권단이 현대차로 방향을 정하더라도 이 같은 엉터리 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처리해야 한다. 가장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은 특혜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점이다. 그러려면 협상 과정을 최대한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현대건설 문제는 정권적 차원의 부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 역시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된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현대그룹을 장악하려 한다거나, 원활한 2세 승계를 위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 한다는 의혹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있을 초대형 인수합병 과정에서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점이다. 감독당국이 분명한 잣대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