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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여수, 숨막히는 박람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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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해석
호남취재본부장

전남 여수는 미항(美港)이지만 너무 멀다.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 5시간이 걸린다. 대구에서는 3시간40분, 부산에서는 3시간을 잡아야 한다. 같은 전남인 목포에서도 3시간, 가장 가까운 대도시 광주에서도 1시간40분이나 걸린다. 국토 최남단에 있는 데다 고속도로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 오지’에서 세계박람회를 열겠다며 나섰을 때 국내에서조차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 먼 곳까지 사람들이 찾아갈까”라고. 하지만 BIE(박람회 사무국) 회원국들을 “개막 이전까지 접근성을 개선하겠다”고 설득, 2012 세계박람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육(陸)·해(海)·공(空)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던 국제사회와 약속 중 상당 부분이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람회 성공 개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여수 연계 교통망과 시내 도로 사업비가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박람회가 2012년 5월 12일 개막하기 때문에 주요 공사는 내년에 마쳐야 하는데도.

 현 상태로라면 박람회 때까지 목포~광양 고속도로를 개통하지 못해 서남권에서 오는 데 지금처럼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 광양~여수 직접 연결 도로가 뚫리지 않아 영남권 관람객 유치가 힘들다. 여수 도심~박람회장 도로(왕복 3차로)는 주차장으로 둔갑할 것이다. 현재 소형기밖에 뜨고 내릴 수 없는 여수공항 활주로를 연장해 중형기도 운항해 하늘 길을 넓히는 것도, 크루즈 터미널을 확장해 바닷길을 넓히는 것도 계획에 그치고 만다.

 길이 멀고 좁은데 어떻게 박람회 3개월간 내국인 745만 명과 외국인 55만 명 등 800만 명을 끌어들인다는 말인가. 한 여수시 공무원은 “‘주차장 여수, 숨막히는 박람회’가 될 판”이라고 걱정했다. 박람회 주제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에 빗댄 자조(自嘲)다.

 여수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 과천청사와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람회를 반납하자, 거부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여수가 박람회를 기회로 한몫(SOC) 챙기려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도로·공항 등은 어차피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이왕이면 제때 건설해 글로벌 이벤트(박람회) 때 유용하게 쓰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가.

 두 달 전 전남 영암에서 F1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교통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열었다가 혹독한 교통지옥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 F1은 전남도가 정부와 협의하지 않고 저지른(?) 일이었다. 이 때문에 후유증으로부터도 정부는 자유로운 상황이다.

 그러나 2012여수세계박람회는 다르다. 2004년 국무조정실 산하 국제행사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국가행사다. 개최지만 ‘지방’ 여수일뿐 유치·개최 주체는 정부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 놓아도 길이 멀고 험해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박람회가 실패하면 국가적으로 손실이 크고,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산다. 정부가 박람회 준비에 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이해석 호남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