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 병·고독·가난에 시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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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서 홀로 사는 권명수(가명) 할아버지가 사회복지관에서 가져다준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점심 도시락을 아껴 저녁과 다음 날 아침까지 해결한다.

#1. 남순임(88·가명·서울 관악구) 할머니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보일러 한 번 틀어본 적이 없다. 대신 전기장판으로 버틴다. 가스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벽에서 나오는 냉기 때문에 오들오들 떨며 지낸다. 이렇게 28년째 혼자 산다. 그의 한 달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9만여원이 전부다. 남 할머니는 “해준 것도 없는데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가 쉬우냐”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식사는 신림복지관에서 배달해주는 도시락으로 때운다. 더 서글픈 것은 외로움이다. 기자가 최근 찾았을 때 할머니는 말했다. “아플 때 가장 슬퍼. 혼자 눈물만 흘려.”

 #2. 김미순(83·가명·경기도 용인시) 할머니는 3년 전 알츠하이머병(치매)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가족을 못 알아본다. 며느리가 병 수발하느라 직장을 그만두자 살림살이가 급속히 나빠졌고 이혼위기까지 갔다. 결국 지난해 8월 할머니는 치매 노인병원에 맡겨졌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가족들이 찾았지만 지금은 6개월째 찾는 사람이 없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건강한 3모작 인생만 늘어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질병·고독·빈곤 등 3중고(苦)에 시달리는 어르신들이 늘어난다. 특히 80대 이상이 많다. 통계청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80세 이상 노인의 3대 애로사항은 건강, 경제난, 외로움·소외감 순이다. 60, 70대에게 우선순위가 밀려 있는 외로움이 80대에게 주요 애로사항으로 등장한다.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어르신들은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 올해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02만 명, 이 중 80세 이상은 20만942명이다. 2000년보다 182% 늘었다. 65~79세(74%)보다 증가 추이가 훨씬 가파르다.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노용균 교수는 “혼자 사는 노인은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며 “늘 혼자 식사를 하면 입맛이 떨어져 기본 영양소를 섭취하기 힘들고 정신건강도 나빠진다”고 말했다.

 행복한 인생 3모작의 또 다른 적은 치매·암·고혈압·당뇨 등의 질병이다. 폐지 수집을 하며 혼자 사는 정용천(80·서울 종로구) 할아버지는 10년 넘게 고혈압·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다. 먹고살기에 급급한 데다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6개월 전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다쳤지만 제때 손을 쓰지 않아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할 상황으로 악화돼 있다.

 치매 노인도 급증한다. 지난해 치매 치료를 받은 80세 이상 노인은 2002년에 비해 6배(65~79세는 3배) 증가했다(건강보험공단). 지난달 화재로 27명의 사상자가 난 경북 포항 인덕요양원 환자 78명 중 40명이 80대 이상(90대 8명 포함)이었다. 50명이 기거하는 구세군 과천요양원은 36명(72%)이 80대 이상이다. 이 요양원 임영관 사무국장은 “2∼3년 전만 해도 70대가 주류였지만 요즘은 80대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팀장, 박태균·김기찬·황운하·이주연 기자,
홍혜현 객원기자(KAIST 교수),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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