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박물관만 가면 스케치북 꺼내 들던 노학자, 이제는 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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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물관에 가면 저절로 손이 움직이며 그림이 그리고 싶어져요.”

 이석우(69·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사진) 겸재정선기념관 관장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 그대로 전시 제목이 됐다. 15일 서울 견지동 목인박물관·갤러리에서 개막한 이석우 관장의 개인전 ‘박물관에 가면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평생 미술을 사랑하고 연모해온 노학자의 오랜 꿈이 이뤄진 현장이다. 청자 항아리,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고구려 와당이 고운 때깔의 수채화로 되살아났다. 잘 그리려는 안간힘보다 우리 문화유산의 속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려는 소박한 마음이 보는 이를 정겹게 한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가 미술평론에 뛰어들고 화가가 된 까닭은 그림을 ‘역사의 자서전’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역사를 통해 그림을 이해하고 그림을 통해 역사를 감촉해왔다. “역사를 만나러 미술관에 간다”고 말할 정도로 미술을 역사의 표정이자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 해석해왔다. 그때마다 문화예술유산을 만나면 “습벽처럼 스케치북을 꺼내 들고 내 마음에 비추이는 줄기들을 낙서처럼 그리곤 했다”는 그의 회고는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정성 들여 완성된 그림인가 헤아리게 만든다. 전통적인 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또 감흥을 얻어 나름으로 재구성한 화면 속에 한 역사학도의 시선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관람객의 몫이다. 전시는 29일까지. 02-722-5066.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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