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약발 떨어진 ‘교전규칙’만 믿다간 또 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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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결코 우발적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꾸준히 문제 삼아온 북한은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연평해전에서 큰 타격을 입자 서해 지역의 전력을 대폭 증강해 왔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지난 1월과 8월에는 서해 5도 앞바다를 겨냥한 대규모 포사격 훈련을 감행했으며 지난 3월에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 훈련과 실전을 통해 도발의 수위를 꾸준히 높여온 끝에 이번에 연평도 공격에까지 나선 것이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데다 전력 측면에서의 자신감까지 확보한 도발인 게 분명하다.

 북한은 서해 5도를 향해 수십 문의 방사포와 1000문에 달하는 해안포, 무인항공기(UAV)와 지대지·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대대적으로 전력을 강화해 왔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4군단장에 김격식 총참모장이 강등돼 부임했다는 지난해 초부터다. 결국 북한은 NLL 무력화를 위해 대규모로 준비해왔고 이를 토대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이번 연평도 공격 이상의 대규모 국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점쳐진다.

 문제는 우리 군의 대비태세다. 우리 군은 NLL 지역의 민감성을 감안해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즉각 반격하는 교전규칙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교전규칙은 반격하되 확전(擴戰)을 촉발하지 않도록 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유엔사령부가 서해지역에 NLL을 설정한 53년부터 시행돼 온 이 교전규칙은 서해 5도 지역의 우리 군 전력이 북한군보다 압도적으로 앞섰을 때까진 유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군의 꾸준한 전력 강화로 우리 군의 전력이 결코 우위라고 할 수 없게 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의 ‘교전규칙’으론 이 지역에서의 북한 도발을 억제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교전규칙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도발 규모에 비례해 대응한다는 소극적이고도 소규모의 작전 개념이다. 북한은 이 같은 맹점을 파고들어 도발의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확전 방지에 매달리는 우리 군을 마구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서해 5도 지역의 전력을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해상의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작전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교전규칙보다 적극적이고 대규모의 작전개념을 새롭게 수립함으로써 필승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우리 군에겐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7이 있다. 북한의 도발을 초기에 대규모로 반격해 섬멸한다는 개념 아래 만든 계획이다. 초전박살의 개념에 맞춰 군비(軍備)를 갖추고 훈련함으로써 북한의 전면전(全面戰) 도발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서해 지역에서도 유사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 지역에서의 북한 도발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초기에 섬멸할 능력을 갖춤으로써 도발 자체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초전박살의 필승전략 말이다. 매번 당하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