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규제] 상. 2013년, 한국 적용 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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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석유 파동 못지않을 것이다."(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김종달 교수) "외환위기와 유사한 위기가 온다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LG경제연구원 이서원 책임연구원)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현실로 닥칠 경우 국민 경제에 심각한 주름이 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전기.석유.시멘트.철강 등 원자재 산업이 문제다. 생산량을 줄이자니 산업계가 원료 부족에 허덕이게 되고, 온실가스 처리 비용을 고스란히 원가에 반영해 값을 올리면 물가가 크게 오를 전망이다. 이 때문에 2020년께 실업률이 10%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력 대란="전기 요금에 두 배 이상의 인상 요인이 생긴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영향을 이렇게 분석했다. 전력 생산량은 줄이지 않고 대신 한도를 넘어 온실가스를 내뿜는 데 따른 벌금성 비용(배출권 구입)을 치렀을 때의 얘기다. 이 경우 배출권 구입에 한 해 수조원이 든다는 게 한전 측의 추산이다. 그래서 전기 요금을 두 배 이상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결국 제조업체들은 생산비가 15~20% 오르고, 물가도 폭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력 생산을 줄이면 제조 공장들이 심각한 전력난에 처한다. 한전이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에 맞추려면 2013년 발전량을 30% 줄여야 한다. 이는 한 해 국내 전 제조업체 공장에서 쓰는 전기의 3분의 2다. 또 국내 모든 가정이 쓰는 양의 두 배다.

대처 방법은 있다. 이산화탄소(CO2)를 뿜지 않는 수력.풍력이나 원자력 발전 비율을 높여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발전량을 늘리면서도 CO2 배출은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수자원은 한계에 달했다. 풍력 발전도 아직은 실험적인 단계다. 원자력은 반대에 부닥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전 관계자는 "원자력이 현실적 대안임을 국민이 이해하고 정책적 배려도 뒷받침됐으면 한다"고 강조한다.

◆주택난.유류 파동 우려=교토의정서 규제가 우리나라에 적용되면 아파트값도 오를 전망이다. 건설 원자재인 시멘트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에서 CO2가 많이 나온다.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배출권을 사는 방법을 택하면 생산비가 두 배로 높아질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리 시멘트 값을 올려 이익을 쌓아놓지 않는 한 배출권 구입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생산량을 줄이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건설회사자재직협의회 관계자는 "중국산 시멘트 등은 품질이 떨어져 아파트에 쓰기 어렵다"면서 "시멘트 부족은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집값이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강업체도 생산량을 줄이는 것 말고는 온실가스 규제를 헤쳐나갈 방법이 없다고 한숨이다. 가령 온실가스를 50% 줄이고자 생산을 줄이면 2001년 조강 생산량 세계 1위, 지난해 5위였던 포스코가 세계 일류 제철회사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고 배출권을 사서 온실가스를 50% 줄이자니 2013년 한 해에만 1조원 가까이 들여야 할 판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 1위 업체인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도 자국 정부에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감축 의무를 지우지 말 것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정유 업계는 최근 대한석유협회와 SK㈜ 등 5개사가 공동으로 대책반을 만들고 2013년께 정유업체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나 될지 등을 분석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2004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맞추는 데만도 업체당 3000억~4000억원이 들 것"이라며 "지금의 추세라면 2013년에는 이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 기름값 폭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온실가스 감축 부담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쳐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고스란히 안을 경우 2020년 경제성장률이 3%대에서 1% 후반~2% 초반으로 떨어진다. 한국경제연구원 유경준 박사는 "경제성장률 2%대란 실업률이 10%를 넘을 수도 있는 수치"라고 말했다.

권혁주.박혜민 기자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감축" 선진국 간 약속 … 어기면 벌칙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고 선진국끼리 맺은 약속이다. 유럽연합(EU).일본 등 34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내용은 2008~2012년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을 95년 대비 약 5% 줄인다는 것이다. 감축량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EU는 95년 대비 -8%, 일본은 -6% 등이다.

감축 의무를 지키지 못할 경우에 어떤 벌칙을 부과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EU 내부적으로는 배출량을 넘긴 사업장에 대해 온실가스 1t당 100유로(현재 환율 기준 약 13만5000원)의 벌금을 매길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적용되는 의무 감축 대상에서는 제외됐으나 2013년부터는 감축 대상이 될 것이 유력하다. 세계 9위의 이산화탄소(CO2) 배출국이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는 EU 국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약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산업구조의 특성상 미국이나 일본은 온실가스를 줄이기가 EU보다 훨씬 힘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가입했다가 2001년 탈퇴했다.

교토의정서는 목표만큼 감축하지 못한 나라는 초과 달성한 국가로부터 '배출권'을 사도록 하고 있다. 배출권은 현재 EU에서 CO2 1t당 7~8유로(약 1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우리가 감축 의무를 질 것으로 예상되는 2013년에는 20~40유로(2만7000~5만4000원)까지 값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교토의정서는 한편으로 청정개발체제(CDM)를 통해 배출 권한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CDM이란 감축 의무를 진 나라가 그렇지 않은 개도국 회사의 공장 설비를 개선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주고 감축량만큼을 배출 권한으로 갖는 것이다. 일본의 전력.철강 회사들은 벌써 중국.인도.남미 등지의 기업과 CDM 사업 협약을 맺어 배출권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감축 의무가 없는 한국은 이마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감축 대상으로 확정된 뒤에야 우리보다 뒤진 나라와 계약을 해 CDM 사업에 들어갈 수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CDM을 할 수 있을 때쯤이면 선진국 기업들이 이미 세계 시장을 모두 선점하고 난 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바로잡습니다

◆ 3월 16일자 8면에 실린 '발등의 불, 온실가스 규제'시리즈 첫 편의 '교토의정서는…'기사에 잘못이 있습니다. '선진국은 2008~2012년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5년 대비 약 5% 줄이도록 했다'고 했으나 95년이 아닌 90년이 맞습니다. 또 같은 기사에서 CDM을 '공동이행체제'라고 한 것은 '청정개발체제'가 맞는 표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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