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조세정책, 중장기 마스터 플랜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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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나라당이 꺼내 든 감세(減稅) 철회 논란이, 우왕좌왕 끝에 철회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봉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고, 이번 논란이 다분히 정치적 발상에서 시작된 점을 생각하면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불붙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

 논란을 주도한 정두언 최고위원의 논리는 간단하다. 다음 총선·대선 때 야당이 ‘부자정권 종식’을 공격포인트로 삼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부자감세’라는 오해를 받아가면서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중간층 확보에는 감세 철회 정책만 한 게 없다는 주장이다. 정치 전략상 그럴싸한 얘기이다. 안상수 대표 등이 솔깃했을 만도 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오해를 받는다면 오해를 풀 생각을 하는 게 먼저다. ‘부자 감세’가 감세 반대 측의 선동 공세에 말려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논리로 설득하는 게 제대로 된 자세다. 오해라면서 그 오해에 편승하겠다는 건 ‘부자 감세’가 오해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된다.

 현재 4구간으로 돼 있는 소득세 과표 중 3개 구간은 2008~2009년에 걸쳐 세율이 이미 2%포인트씩 인하됐다. 다만 최고세율 35%가 적용되는 8800만원 초과구간에 대해서는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시행을 2년 유예해 2012년 이후 소득부터 적용키로 한 것이다. 근로소득자 절반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 기존의 각종 감면 제도나 이 정부 들어와 진행된 소득 과표 하위구간에 대한 감세는 논외로 치고, 유예된 최고세율 인하만을 따로 떼내 부자감세로 몰아붙이는 건 올바른 문제 제기 방식이 아니다.

 법인세의 경우 2008년 25%에서 22%로 낮춘 과표 2억원 초과구간에 대한 세율을 다시 20%로 낮추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이 또한 지난해 시행시기를 2년 유예키로 했던 부분인데, 이젠 아예 시행 자체를 철회하자는 주장이다. 소득세와 달리 법인세는 국제경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정부가 집권 전부터 법인세를 경쟁국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강조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의 22%는 물론, 낮추기로 한 세율 20%는 미국·일본보다 상당히 낮지만 아시아 주요 경쟁국인 대만·싱가포르·홍콩보다는 여전히 3%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이다.

 현재 확정된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불변의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문제다. 현재 감세 계획을 유지해 나가는 것과 이를 철회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국가 경제나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보는 게 아니라, 오해받기 싫으니 없던 걸로 하자는 식의 발상이 가당치 않다는 거다. 친서민이란, 어찌 보면 당연한 화두가 전 정권 때의 2대8과 유사한 3대7 편가르기로 왜곡돼 그 수단으로 세제가 악용되는 분위기가 매우 위험하다는 얘기다.

 우리 조세정책은 훨씬 더 포괄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통일에 대한 대비라는 중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이를 위해 소득세·법인세는 물론 부가가치세의 운용을 어찌할 것이냐에 대한 중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노력과 대비이지, 선거판에 득 될까 싶어 내놓는 감세 철회 같은 주장이 아니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