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관리도 못하는 대학이 직선제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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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립대가 총장 직선제를 계속 유지할 경우 시.군.구 선거관리위원회의 위탁 관리를 받게 된다. 지난 3일 임시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지병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의결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50개 국립대 가운데 한 곳을 제외한 모두가 직선으로 총장을 뽑는다. 선관위의 총장 선거관리는 대학의 자치권을 훼손하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시행에 신중해야 한다. 법 집행에 앞서 국립대의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해야 할 것이다.

총장 직선제는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고 사회 전반에 민주화 바람이 한창이던 1988년 정부와 재단이 자의적으로 총장을 임명하는 데 따른 폐해를 없애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마다 총장 선거가 과열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 최근 들어서는 대학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금품이 마구 뿌려지고 출마자끼리 합종연횡을 통해 차기 선거에서 밀어주는 조건으로 당선되는 등 타락상이 정치권을 뺨친다. 교수사회가 출신 고교.지역별로 분열하고 논공행상에 따라 보직을 나눠갖는 담합이 낯설지 않다. 투표 자격을 둘러싸고 교수.직원.학생.동문 등 학교 구성원이 다투는 추태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히 총장의 리더십은 손상되고 대학 경영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총장 직선제를 반대해왔다.

그러나 직선제의 폐단이 크다고 선거를 선관위가 관장한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치다. "대학의 자립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며 총장 선거는 대학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서울대 총장의 발언은 타당하다. 직선제로 인해 대학사회가 극한 대립하고 사분오열한다면 직선제를 없애야 한다. 그러나 직선제를 시행하는 한 대학 자체적으로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선거를 관리할 능력조차 없다면 그런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이제 대학사회가 직선제의 그릇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