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투자 내쫓으며 경제 잘되기 바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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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수도권 규제 완화가 미뤄지면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외국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연기하거나 투자계획을 아예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공장은 수도권에 지을 수 없다는 규제 때문이다. 경기도 화성에 공장을 지으려던 한국3M은 착공 시기를 무기한 미뤘다. 일본의 NHT와 NEG는 투자 규모를 각각 3분의 1과 10분의 1로 줄였다. 상반기 중에 각각 2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독일과 영국 업체는 투자계약 체결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국가 균형발전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외국기업의 발목을 잡고, 내쫓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가. 세계 각국은 지금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려 혈안이다. 정부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이 한두 차례가 아니다. 행정도시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이루어지면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수도권의 과밀 해소'에 역행한다는 지적과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이 나오자 돌연 입장이 바뀌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앞으로 쏟아질 지방자치단체와 대권 후보들의 요구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유치를 특정 지자체나 대권 후보의 무리한 요구로 몰아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도권 규제로 들어오지 못하는 외국기업은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난다. 국내에서나 통하는 균형발전 논리를 외국기업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기업에 공장을 어디에 지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 국내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도 문제다.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한다고 지방에 투자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기업은 비용과 편익을 따져 최적의 입지에 공장을 짓는다. 국내투자가 부진한데도 해외투자는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를 따져보라. 국내에 투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국가 전체로 손실일 뿐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균형발전 논리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