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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복지의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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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02면

김황식 국무총리가 20일 지하철 적자를 거론하며 65세 이상인 모든 노인에게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 노령수당을 주는 것도 과잉 복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후 야당과 노인단체는 “시대역행적 발언이다” “노인을 구박하려 든다”며 총리를 비난했다. 김 총리의 얘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신동파(66)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의 얘기다. 그는 지난해 65세가 넘어 주민센터에서 지하철을 돈 안 내고 탈 수 있는 시니어패스카드를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신씨는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주민센터에 갔지만 쑥스러워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65세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무료승차 카드를 받기가 민망해서였다. 이후 다시 주민센터에 갔는데 그때는 동장이 “편리하다”며 손수 카드를 챙겨줬다. 신씨는 요즈음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산에 갈 때 이 카드를 편리하게 쓴다고 했다.

애초부터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무임 혜택을 안 줬다면 신씨는 자기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탔을 것이다. 신씨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미 주어진 혜택을 박탈하는 건 엄청난 저항을 부를 것이다. 당장 부자 노인의 지하철 무료 승차를 중단하거나 노령수당 지급을 중단하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번 주고 나면 다시 빼앗기 어려운 복지 정책의 특성을 감안해 정책을 세워야 한다. 프랑스를 보라. 연금개혁을 하면서 온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지 않았는가.

한국의 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만큼 새로운 정책을 펼 여지가 많다. 기존의 정책을 고치는 것이 어렵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을 정교하게 수립하는 기술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공약으로 내건 전면적 무상급식이 그 시험대다. 서울·경기도를 비롯한 지자체는 무상급식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공약에 얽매여 빚을 지다 보면 무상급식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무상보육의 확대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고소득자에 대한 육아수당 지급을 2013년부터 중단하기로 한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좌파 정치인인 유시민 전 의원은 성공한 복지부 장관으로 기억된다. 그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복지 정책의 한계를 알고 이른바 우파 복지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저소득층의 의료복지 정책인 의료급여를 축소하고, 장애인에게 무료로 주던 LPG를 없애 연금으로 전환하거나,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국민연금 개혁을 해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용기다. 가난하고 약하고 나이든 노인을 돕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문제는 돈을 효율적으로 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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