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남·북한 혼동하는 러 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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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일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 무관부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하루 전날 프랑스 AFP통신 모스크바 지국이 "정수성 대장이 이끄는 북한군 대표단이 28일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AFP는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을 인용해 "스탈린식 국가에서 온 대표단이 러시아 장병들의 훈련을 참관하고 러시아 무기를 직접 시험하는 기회도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러시아와 북한 간 군사협력은 소련 붕괴 이후 한동안 침체됐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양국 관계가 다시 활성화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연합뉴스도 AFP 기사를 받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 기사를 접한 우리 육군에서 난리가 났다.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한 것은 북한군 대표단이 아니라 우리나라 육군 제1야전군 사령관 정수성 대장이었기 때문이다. 한.러 군 교류 차원에서 매년 하는 상호 방문 행사였다.

육군의 연락을 받은 주러 한국대사관 무관부는 부랴부랴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섰다. 혹시 북한군 대표단이 같은 시기에 러시아를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는 AFP통신 모스크바 지국이 인테르팍스 통신 기사에 나온 한국을 북한으로 잘못 이해한 것임이 드러났다.

러시아 언론이 한국과 북한을 혼동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지난달 11일 러시아 제2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극우민족주의자들에게서 심한 폭행을 당했을 때의 일이다. 이때도 일부 러시아 언론은 "북한 유학생이 스킨헤드족의 칼에 맞았다"고 보도했다. 이 오보 때문에 현지 교민들 사이에선 "한국 학생과 북한 학생이 동시에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처럼 러시아 언론의 오보가 잦은 데 대해 모스크바 교민사회에서는 한국대사관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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