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 vs 260 … 누가 경쟁력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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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국내 맥주회사는 2개일까, 아니면 90개일까. 한국주류산업협회는 소규모 맥주 제조회사 88개를 포함해 90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규모 맥주는 제조자의 영업장에서 직접 마시는 고객에게만 판매가 허용된 하우스맥주다. 수퍼나 편의점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지비루’라 불리는 일본의 소규모 지역맥주와는 다르다. 설사 소규모 맥주 제조사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전체 맥주시장 3조5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왜 한국에는 맥주회사가 2개뿐일까. 1.85kL의 발효조 시설을 갖춰야 면허를 내주는 진입규제가 그 원인이다. 이 시설은 500ml 맥주 370만 병을 생산할 수 있는 아주 큰 규모다. 시설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중소 규모 업체의 맥주시장 진입이 불가능하다.

2개 회사만 맥주를 생산하는 구조로는 맥주 맛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다양한 맥주가 나오기 어렵다. 맥주 맛을 결정하는 것은 맥아와 호프의 함유량인데, 두 회사의 맥주 모두 이들 함량이 낮아 풍부한 맛과 향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또 국내 맥주는 대부분 저온 발효시켜 만드는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갖는 라거 계열이다. 고온 발효시켜 만드는 묵직하고 쓰며 짙은 맛을 갖는 에일 계열의 맥주는 거의 없다.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도 문제지만, 국가경제적으로 볼 때 맥주산업의 경쟁력이 더 큰 문제다. 시장에 단 2개의 회사만 있는 상황에서는 사업자들이 더 좋은 맥주를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할 가능성이 낮다. 경쟁력은 경쟁적 시장구조에서 나온다.

1994년 진입규제를 대폭 완화한 일본의 경우 현재 260여 개의 맥주회사가 활발하게 경쟁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은 기린맥주와 아사히맥주가 세계적인 주류회사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최근 우리 막걸리산업 활성화도 10년 전 신규 제조면허 허용과 공급구역 제한 폐지 등 규제완화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주류의 경우 그동안 산업 측면보다는 주로 세수 확보 차원에서 원료 조달과 제조·유통에 이르기까지 정부 규제가 과도했다. 이제 주류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해 규제를 대폭 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류산업이 발전한다.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시장구조개선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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