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with] 회사원 박동원씨의 일일 바텐더 체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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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감상하고 향기를 맡고 맛을 음미한 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사랑의 묘약….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술이 바로 칵테일이다. 술을 섞는다는 점은 폭탄주와 같지만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맛과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칵테일만이 가진 장점이다. 폭음하는 문화에서 즐기는 바(bar) 문화로 변해가면서 칵테일을 만들고 직접 칵테일 쇼까지 보여주는 바텐더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직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주 with week&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는 박동원(27)씨와 함께 바텐더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봤다. 자신만의 특기로 개발해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박씨, 과연 하루 동안의 교육만으로 바의 엔터테이너라 불리는 바텐더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글=노승옥 기자<nicegu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지거, 스퀴저, 머들러 … 어, 장난 아닌데

"얼음은 맑고 단단한 걸로 고르세요. 깨끗한 얼음을 써야 제대로 된 칵테일 맛이 납니다." 어라, 얼음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네. 바텐더 사관학교라 불리는 조니워커스쿨(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김철수(왼쪽사진(左)) 전임강사의 얼굴에 자못 비장함마저 묻어난다. 하긴 조주기능사 자격시험 시험관을 거친 20년 경력의 베테랑이라고 하니 프로는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칵테일을 만들기 전 바텐더는 세 가지를 결정해야 해요. 어떤 글라스를 쓸 것인가, 어떤 기법으로 만들 것인가, 장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죠. 이 세 가지가 잘 어울려야 근사한 칵테일이 탄생한답니다."

위스키, 보드카, 리큐어, 테킬라 등 베이스로 사용하는 술도 제각각인 데다 칵테일 종류에 따라 잔은 물론 혼합하는 기법마저 다르다고 하니 슬슬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 똑같은 재료인데 왜 내 칵테일은 맛이 다를까

30분간의 '속성' 이론 교육을 마친 후 드디어 실습에 들어갔다. 아마추어의 실습이지만 베이스를 비롯해 모든 재료를 진짜로 사용해야만 학습 효과가 크단다. 떨리는 첫 칵테일은 스카치 위스키 조니워커를 베이스로 한 '러스티 네일(Rusty Nail)'. 얼음을 넣은 글라스에 재료를 넣고 휘젓기만 하면 되지만 막상 만들고 나니 김 강사 것과 색깔이 다르다.

"배합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래요. 배합 비율이 맛을 좌우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그래도 내 입맛엔 딱인데. 수준을 높여 도전한 다음 작품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싱가폴 슬링(Singapore Sling)'. 저녁 노을의 빛깔을 보고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개발한 칵테일이란다. 고든스 진과 체리 브랜디, 시럽 등을 넣고 오렌지로 장식하니 제법 그럴싸하다. 여자 친구에게 만들어 주면 점수 좀 따겠는걸.

클래식 칵테일에 이어 모던 칵테일인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과 '치치(Chi-Chi)'를 만들고 나니 어느덧 플레어 바텐더에 도전할 시간이 되었다. 주 5일씩 꼬박 6주를 투자해야 이수할 수 있는 전문 바텐더 과정을 단 세시간 만에 후닥닥 배우고 나니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만들다 실패한 칵테일들을 보면서 괜스레 김 강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음 같아선 다 마셔버리고 싶은데 플레어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래 참자 참아.

*** 손이 부끄럽다, 머나먼 플레어 바텐더의 길

칵테일 쇼로 유명한 강남의 한 플레어 바. 2년 경력의 김윤주(24) 플레어 바텐더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플레어를 할 칵테일은 마이타이입니다. 옷부터 갈아입으시고요. 간단히 몸 좀 풀면서 제 동작을 따라해 보세요." 몸을 풀라니? 이래 봬도 운동신경 하나는 끝내준다는 얘기를 듣는 몸인데.

"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공중에 던져 보세요." 김 바텐더의 왼손을 떠난 술병은 정확히 세 바퀴 반을 돌아 오른손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등 뒤로 던지더니 앞에서 받는다. 마치 서커스의 저글링 공연처럼.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역시 달랐다. 던지면 놓치고, 던지면 놓치고. 오늘처럼 손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으리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병을 세 개나 깨고 나서야 마침내 김 바텐더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손바닥도 얼얼했지만 초보 플레어 바텐더의 신고식치곤 나쁘지 않았다. 박수도 몇 번 받았기에.

바에서 부담없이 마시는 흔한 칵테일 한 잔. 그 속에 손님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바텐더의 땀방울이 녹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었다. 참, week&이 배달되고 나면 여기저기서 칵테일 한 잔씩 만들어 달라고 난리일 텐데 도대체 뭘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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