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해서 오히려 풍족했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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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06면

고바우 김성환 작가의 39가회동의 달39, 55*74㎝

서울 시내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 거리엔 하얀 눈이 막 쌓이기 시작한다. 란도셀을 멘 꼬마와 쌀가마를 진 지게꾼의 걸음걸이가 재다. 영화 ‘오발탄’과 ‘연산군’ 포스터가 붙어 있는 담벽 옆으로 지나가는 번데기 장수의 목청에선 금세라도 “뻔~”하는 소리가 나올 것 같다.시사만화 ‘고바우’로 잘 알려진 김성환(78) 화백이 50여 년 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는 전시회를 연다. 전쟁 직후 우리 사회의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한 ‘그 시절 그 모습’ 전이다. 당시 찍어놓은 사진을 토대로 촘촘하게 그려낸 작가의 그림에는 그 시대의 서정이 포근하게 배어있다.

고바우 김성환 개인전- ‘그 시절 그 모습’, 9월 29일~10월 4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문의 02-736-1020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어머니, 그 옆에서 바둑이와 함께 불을 쬐며 졸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훈훈한 온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한옥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돈암동과 가회동 근처의 고즈넉한 정경은 또 어떤가. 빨래를 널어놓은 판자촌 아래 꽁꽁 언 개천을 썰매로 지치는 코흘리개 아이들의 표정은 부족해서 오히려 풍족했던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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