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 기자의 ‘금시초연’ ⑧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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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다음 달 하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초연되는 보이토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국립오페라단 제공]

웅장함도 한두 번이다. 작정하고 무겁게 만든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는 관객을 질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100명 넘는 합창단, 강한 소리로 부딪히는 금관악기, 그리고 성악가의 거센 음성이 계속된다.

주제 때문이다. 선과 악, 인간 본성을 다룬 괴테의 ‘파우스트’를 악마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가 전성기 시절의 영화를 누리지 못한다고 판단한 아리고 보이토(1842~1918)는 최대한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작품을 만들었다. 베르디의 ‘오텔로’ ‘팔스타프’ 등 흥행 오페라의 대본 작가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1868년 초연은 처참했다. 의도가 분명한 작품에 대부분 그렇듯 사람들은 거부감을 먼저 보였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환호 대신 고성으로 가득 찼다. 극장 주변에는 경찰이 동원됐다. 보이토는 작품 길이를 줄이고 규모도 가볍게 쳐냈다.

그래도 무겁다. ‘메피스토펠레’는 전세계적으로 자주 공연되지 않는 오페라다. 복잡한 음악과 스케일 큰 드라마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1818~93)는 같은 원작으로 히트작을 내놨다. 그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보다 부드럽고 말랑하다. 요즘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작품 랭킹 10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이 ‘메피스토펠레’의 한국 초연을 앞두고 있다. 이탈리아의 연출가·지휘자와 한국 성악가들을 조합했다. 거대한 무대와 강렬한 메시지로 한국의 청중을 만나겠다는 계획이다. 전위적이라는 평을 들었던 19세기의 오페라, 21세기 한국에서 안착할 수 있을까.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마술피리’ 등 회전문처럼 돌아가던 국내 오페라 레퍼토리에 지친 관객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보이토 ‘메피스토펠레’(1867년 작. 총 2시간 40분)=10월 20, 22, 2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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