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라운지] X선 판독은 '숨은그림찾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진단방사선과 전문의들은 숨은 그림을 잘 찾는다. 필름에 담긴 미세한 음영의 차이로 질병을 밝혀내는 것은 때론 은하계에서 별자리를 찾는 것보다 더 섬세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진단방사선과 전공의 1년차와 4년차의 '숨은 질병 찾기'실력은 얼마나 될까. 전문의의 판독력을 100으로 가정한다면 1년차는 20~30 수준이다. 그래서 이들이 판독한 결과는 반드시 선배인 전문의의 치밀한 검토를 거치게 된다. 이들은 전공의 4년 동안'판독 고수'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때론 혼쭐이 나고, 때론 눈물을 쏟으면서 단련을 받는다. 생명과 직결된 오진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치더라도 역시 오진은 나온다. 전문의들도 종종 자기 평가를 한다. 동일한 필름을 여러 명이 돌려가며 질환을 맞춰보거나, 한 사람이 같은 필름을 시간차를 두고 판독해 보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70~80%가 일치하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20~30%의 오차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다.

첨단 진단장비의 발달은 전문의의 고충을 더욱 가중시킨다. 기능이 복잡하고 정밀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전문가를 나눠 양성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장비별로 자격인증제를 실시한다. 일정 기간 전문 연수를 거쳐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정부나 보험회사는 이 자격증이 있어야 의료보험료를 지급한다. 일반 의사들은 촬영은 할 수 있지만 비용을 받을 수 없으니 자연적으로 비전문가들은 도태된다.

필름의 영상은 진단 장비의 가격에서도 나타난다. 300만원짜리 초음파가 있는가 하면, 3억원짜리도 있다. 1000만원짜리 중고 CT가 있는가 하면, 10억원을 호가하는 첨단CT도 나왔다. 물론 성능이 같을 리 없다. 이쯤 되면 같은 필름이라도 판독하는 의사에 따라, 필름을 찍는 장비 성능에 따라 오진의 폭은 한없이 넓어진다. 우리나라에선 진단방사선과 전문의뿐 아니라 일반의사에게도 판독 권한이 주어진다. 한의사가 CT를 활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판결도 나왔다.

검사 필름의 영상은 점과 선이 만들어낸다.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 단계인 회색의 조화에 환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일반인은 회색을 분류하는 능력이 여덟가지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색깔 전문가는 64가지의 회색을 분류한다고 하지 않는가.

MRI 의료보험 적용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의 가격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판독의 오차를 줄이려는 노력일 것이다.

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