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교수와의 대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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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31면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무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교회의 꽤 넓은 묘지를 나는 샅샅이 훑었다. 그의 무덤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늦여름 북구의 해가 넘어갈 무렵, 그늘진 비석에 붙어 있는 애덤 스미스라는 글자를 기어이 발견했다. 200년 넘게 여기 묻혀 있지만 스미스는 내게 아직도 살아있는 사상가다.

먼저 그의 묘비명을 살펴 보았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원서 국부론이 아니라 인간의 온갖 정서와 감성을 연구한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묘비명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둑해진 탓인지 글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창살로 경계 지워진 무덤 안쪽 바닥에 ‘사유재산은 인간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글귀가 2001년의 생생한 연도 표기와 함께 읽힌다. 어, 저게 아닌데….

나는 어이가 없어 잠시 쇠창살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부스스한 얼굴의 스미스 교수가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거 말이야, 요 근래 ‘애덤 스미스 재단’이라며 일단의 인사들이 나타나 그렇게 새겨 놓고 갔다우. 사유재산은 내 주제가 아닌데…” 사뭇 난처해 하는 스미스 교수의 뒤를 자세히 보니, ‘도덕…정…저자…’라는 묘비명이 반쯤 지워진 채 철문에 가려져 있었다. 도덕은 지워지고 사유재산은 새로 새겨졌다? 씁쓸한 심경으로 스미스 교수를 바라보았다.

“왜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남고 싶었죠? 당신이 제창한 자유시장 경제는 도덕심이 결여되어선가요?” 나의 질문에 스미스 교수의 얼굴이 잠깐 빛났다. “국가가 부강해지는 방법은 분업과 교환에 의한 생산성 증대, 그리고 시장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라는 것을 국부론에서 설파했지. 그런데 남의 것을 맘대로 빼앗고 훼손해도 제재받지 않는 사회에서는 시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어요. 식민지 개척에 앞서 있던 스페인이 영국과의 국력경쟁에서 진 것도 귀족과 권력층이 자기 나라 시장을 마음대로 유린했기 때문이지.” 이 대목에서 나는 약간 빈정거려야 했다. “대영제국이 도덕 챔피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그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잡혔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약자를 힘으로 누르며 생겨난 모든 제도, 노예제, 신분제도,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했어. 강제에 의한 번영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그것은 사실이었다. 전 생애에 걸친 그의 일관된 관심은 인간의 자발적 본성과 그에 기반한 사회질서였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생활여건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지켜주는 경제 질서는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시장경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익 추구와 도덕감정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할 수 있지? 카를 마르크스를 비롯한 19세기 학자들이 ‘스미스 문제’라 명명했던 게 여전히 궁금했다.

스미스 교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자유주의 경제는 도덕심에 기반한 사회질서 없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도덕심이란 간단명료했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도 행하지 않는 것’. 이것이 스미스가 규정한 사회정의였다. 인간의 본성에는 이런 도덕심이 내장되어 있고, 이는 타인의 감정이나 행위에 동감하는 능력에서 연유한다는 게 그의 이론이다.

“그럼 악덕 기업인, 사기꾼, 독재자들은 뭐죠?” 스미스 교수가 조용히 말을 잇는다. “그들은 남의 감정과 처지를 알면서도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감정 판단을 무시하는 거지. 자신의 욕심이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야.” 신의 대리인 격인 그 ‘공평한 관찰자’는 우리 말로 번역하면 ‘양심’이나 ‘하늘’이 되리라.

“바로 그 ‘공평한 관찰자’의 장기 부재가 문제라니까요. 그렇다면, 최근 한국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어떻게 보세요? 서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 도덕적 처사 맞죠?” 무덤으로 돌아가려던 스미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공정한 룰의 확립이지.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이나 국방과 같은 공공재, 특히 공교육에 투자해야 해. 진정한 친서민 정책은 시혜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거, 생각 있는 사람들은 다 알지 않나?” 그 ‘생각 있는’ 사람들이 요즈음은 다 휴가를 떠난 듯, 10년 앞을 내다보는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서민을 내세울수록 서민의 복지에서 멀어질 위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그거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스미스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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