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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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 한국인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지상에서의 첫날을 맞았지요. 산모의 첫 국밥도 마른 솔잎(갈비)이나 솔가지를 태워 끓이고, 아해가 태어난 지 사흘째인 삼날이나 이렛째인 칠날에는 소나무로 삼신할미한테 산모의 건강과 새 생명의 장수를 빌었습니다.

『소나무』(정동주, 거름)

그뿐입니까. 그 아이가 자라서는 뒷동산 솔숲에서 솔방울을 차대며 놀았고, 춘궁기 때면 송기죽이나 송기떡을 만들어 허기를 달랬고, 송편으로 해를 세며 살다가 죽으면 송판으로 짠 관에 육신이 담겨 솔숲 언저리에 묻히고, 그 무덤가에는 둥그렇게 솔을 심어 이승에서 저승을 꾸몄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소나무가 그렇게도 아름다운 영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김석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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