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강해지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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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에 서강대학교에서 오래 봉직하고 올해 정년퇴임을 하는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의 고별강연이 있었다. 이제 정든 교정을 떠나면서 후학들에게 주는 강연에는 그 동안 살아오신 삶의 연륜과 학문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었다. 교수님은 강연을 다음과 같이 끝맺으셨다. "더 좋은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한 사람이 강해지고, 강한 사람이 선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평화는 저절로 올 것입니다. "

"강한 사람이 선해지고 선한 사람이 강해지는 세상이 온다면"- 가정법이 전제가 되는 이 말은 즉 지금 우리는 선한 사람이 강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선함 때문에 이리저리 짓밟히고 끌리고 이용당하고, 결국은 약자로 밀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제 곧 새해가 밝아오는데 새해는 선(善)의 상징인 양의 해다. 어디선가 읽은 양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이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하루는 토끼가 울면서 꿀벌을 데리고 왔다. "하느님, 제발 꿀벌을 어떻게 해 주십시오.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침으로 쏘아대니 견디기가 힘듭니다. "

"그래? 그럼 꿀벌이 일생에 꼭 한 번만 침을 쓸 수 있도록 해주마. 네 목숨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일에만 침을 사용하거라. "

이번에는 양이 찾아왔다. "하느님, 다른 동물들이 저를 너무나 못살게 굴어서 견디기가 힘듭니다. 제겐 방어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 "그렇구나. 너를 너무 착하게 만들었구나. 그렇다면 너의 이빨을 아주 날카롭게 해서 물어뜯을 수 있게 하고 너의 부드러운 발을 사나운 발톱으로 만들까?"

"아, 아닙니다." 양이 다급하게 답했다. "저는 힘없는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사나운 육식동물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냥 이슬과 풀을 먹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합니다."

"그럼 네 입에 독을 숨길까?" "아니요. 그건 더 나쁩니다. 남에게 독을 뿜어 해하는 뱀과 같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뿔은?" "그것도 싫습니다. 염소는 늘 남을 공격할 때만 뿔을 씁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를 해하는 다른 동물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너도 남을 해코지 하는 수단이 있어야 할 텐데…."

"그래야 한다면…." 양이 한숨지으며 말했다. "하느님, 그래야 한다면 저를 그냥 이대로 두십시오. 제게 남을 해하는 힘이 있다면 남을 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그냥 약한 대로, 상처주기보다 상처를 받으며 살겠습니다."

새 대통령과 함께 양의 해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새해에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은 권력과 부의 힘으로 호시탐탐 약한 자를 잡아먹는 '강한' 사람들보다 올곧고 착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것은, 한자의 '아름다울 미(美)'자를 보면 '클 대(大)'자와 '양 양(羊)'자의 합성으로 돼 있다. 하필이면 옛 중국사람들은 왜 아름다움을 '큰 양'에 비유했을까? 내 부족한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아마도 선의 상징인 양이 살이 찌면, 즉 약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면 전쟁도, 폭력도, 불평등도 없이 이 세상이 평화롭고 아름다워지리라는 소망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중앙일보 독자 여러분, 아무쪼록 우리 함께 선한 사람이 강해지는 세상, 더 좋은 세상 만들고, 살이 포동포동 찐 '큰 양'처럼 아름다운 새해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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