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문제점 알고도 해결 대신 보급확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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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06면

지난 9일 서울 행당동에서 압축천연가스(CNG) 시내버스의 연료탱크가 폭발해 승객 17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스통이 있던 버스 아래쪽이 마치 종이짝처럼 찢어져 있다. 김태성 기자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압축천연가스(CNG) 버스의 가스용기 결함을 알고도 이를 해결하지 않고 CNG 버스 보급을 확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13일 “지난 6년간 전국적으로 CNG 버스의 가스용기 폭발사고가 이어졌지만 부상자가 많지 않은 데다 서울은 사고가 없어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 불안하게 하는 ‘시민의 발’ CNG 버스

서울시의 CNG 버스는 사고 이후 오히려 배 이상 늘었다. CNG 버스를 처음 도입한 2000년 이후 첫 폭발사고가 난 2005년까지 서울시의 CNG 버스 보급대수는 2361대. 2006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4942대가 더 늘었다. 2005년 첫 CNG 버스 폭발사고는 가스용기를 국산화하면서 불거졌다. 2005년 1월 당시 전북 완주 현대차공장에서 CNG 버스에 가스를 충전하던 중 CNG 용기가 파열됐다. 당시 사고로 버스가 반파됐지만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적어 직원 한 명이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

8월에는 전주시의 한 CNG 충전소에서 충전 중이던 CNG 버스의 용기가 폭발했다. 이후 2007년 한 차례, 2008년 세 차례, 2009년 한 차례의 유사한 폭발사고가 꼬리를 물었다. 모두 가스용기를 국산화한 NK사의 제품 탓이었다. CNG 버스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6년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임기 첫해다. 오 시장은 선거에서 서울시 대기 질 개선을 위해 CNG 버스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시내버스 7760여 대를 모두 CNG 버스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그간 연이은 사고에 불안해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지난 9일 서울 행당동 CNG 버스 폭발로 17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지난해 11월부터 CNG 버스에 사용되는 가스통 중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을 교체해 줄 것을 제조업체에 권고해 왔으며, 관련 부처인 지식경제부에도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기업이나 부처에 책임을 떠넘기는 형태였다.

이탈리아제 가스용기 점검대상서 제외
중앙부처의 책임도 크다. 지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CNG 버스 4300대를 대상으로 특별 안전점검을 벌였다. 그 결과 전체의 4.7%인 201대의 버스에서 연료통 용기 결함이 발견됐다. 이 중 폭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인 연료 누출이 전체의 66.7%인 134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특별 안전점검은 국산인 NK사가 제작한 가스용기에 국한됐다. 지난 9일 폭발한 CNG 버스의 가스용기는 이탈리아제다. 도입 당시인 2000년부터 사용해 왔던 이탈리아제 가스용기는 지금까지 한 차례의 폭발사고도 없었다는 이유로 안전점검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CNG 버스 폭발사고는 2008년 국정감사에서도 문제점이 제기됐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이명규(한나라당) 의원은 당시 “CNG 버스 용기 사고의 직접 원인이 NK사의 제조 불량 때문이었지만 당시 지경부는 제조 기준조차 위반한 NK사에 안전성을 확인한 뒤 사용하도록 했다”며 “시민의 발인 CNG 버스가 시한폭탄을 안고 달린다”고 비판했다.

CNG 버스 폭발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대형 사고 이후에야 나왔다. 오 시장은 지난 11일 “차령(車齡)이 9년 이상 된 CNG 버스는 안전검사를 마칠 때까지 운행을 중단하고 출고한 지 3년 이상 된 CNG 버스는 매년 가스용기를 차량에서 완전히 분리해 비파괴검사 등을 하는 정밀점검을 의무화하겠다”고 말했다. 지경부도 유사한 대책을 내놨다.

그나마 서울시와 지경부가 밝힌 대책은 2년 전인 2008년 말 지경부와 환경부가 내놓은 ‘CNG 자동차 안전성 향상 연구’ 보고서의 일부분을 인용한 데 불과하다. 본지가 입수한 이 ‘대외비 보고서’에 따르면 ▶버스 아래쪽에 있는 지금의 CNG 가스용기를 선진국처럼 지붕 위에 둘 것 ▶정기검사 주기에 맞춰 3년마다 CNG 용기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 ▶안전성과 경제성이 우수한 용기 형태를 선택할 것 ▶가스 누출 경보 시스템을 설치할 것 ▶가스 긴급차단 밸브 및 작동 스위치를 구비할 것 ▶가스자동차 종사자 교육훈련제도 마련 등 안전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지경부는 당시 보고서에서 “우리보다 CNG 자동차 역사가 10년 이상 앞선 북미 선진국에서는 이미 CNG 용기의 설치 위치를 지붕 위로 두고 있으며, 이는 승객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CNG 용기를 지붕 위에 부착함으로써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고 일상 점검 등 유지 관리를 용이하게 해 CNG 자동차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며 용기의 위치 변경을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은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등 해당 부처가 당시 용역 보고서를 제대로 수용했다면 9일과 같은 대형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며 “지난 수년간 국정감사 등을 통해 같은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지만 다들 예산과 인력 문제를 핑계 대며 대책을 차일피일 미뤄 왔다”고 말했다.

'홍역'을 치른 서울시는 이제 차세대 그린카 사업인 전기버스와 하이브리드버스 도입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CNG 버스는 올해를 정점으로 퇴역 수순을 밟게 된다. 논란이 된 CNG 버스 연료통 위치도 하이브리드버스 도입과 함께 버스 아래에서 지붕 위로 옮겨진다.

전기버스 4억5000만원, CNG 버스의 두배
서울시 맑은환경본부 이인규 대기관리담당관은 13일 “우선 11월 17대의 전기버스 도입을 시작으로 내년 40대, 2012년 100대 등 2014년까지 총 657대의 전기버스와 260대의 하이브리드버스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담당관은 이어 “폭발사고로 CNG 버스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만큼 대안으로 보다 안전하고 더 친환경적인 전기버스 도입을 애초보다 앞당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올 6월 ‘2020년까지 서울시내 전체 버스의 50%인 3800대를 전기버스로, 나머지 절반을 CNG와 전기를 같이 쓰는 하이브리드(hybrid)버스로 교체’하는 그린카 보급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이미 현대중공업과 한국화이바를 통해 전기버스 개발을 완료했으며, 현재 2대를 성능 평가하고 있다. 이 버스는 1회 충전하면 110㎞를 주행할 수 있으며, 30분 내에 재충전할 수 있다. 최대출력은 322마력으로 지금의 CNG 버스보다(290~300마력) 힘이 세다. 전기모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배출가스가 전혀 없다. 따라서 시내버스로 운용하기에 기능적으로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전기버스의 대당 가격은 4억5000만원.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CNG 저상버스의 가격(2억원)보다 배 이상 비싸다. 서울시는 양산 단계에 들어가면 대당 2억5000만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1억원이 넘는 배터리를 5년에 한 번 교체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 담당관은 “초기엔 양산 준비 단계라 값이 비싸 버스를 크게 늘릴 수 없지만 대량생산 체제가 정착되면 2020년까지 목표치를 채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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